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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보금자리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의 벅넬(Bucknell) 대학은 학비가 비싸기로 소문난 사립대다. 1년 수업료가 4만 달러를 넘어 미국 대학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1846년 개교한 벅넬대는 언어와 역사, 철학 등 인문학 중심이면서도 경영학, 공학 등 특화된 학제를 운영하는 등 창조적인 학풍을 자랑한다. 또 하나 특기할 점은 '맥스웰상'이다.

이 상은 벅넬대 출신으로 학장, 부총장을 지내며 대학과 지역사회 발전에 공헌한 배리 맥스웰을 기념해 제정한 상이다. 1994년부터 소외 계층에 대한 주거 지원 프로젝트를 적극 추진하거나 주거 복지 협력 사업에 공로가 큰 사람을 선정해 시상하고 있다. 배움의 전당으로서의 대학 역할뿐 아니라 지식과 재능을 사회 발전에 쓰는, 실천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정부 때 입안된 보금자리주택도 저소득층 주거 복지 차원에서 야심 차게 추진된 사업이다.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2018년까지 임대주택 150만 호를 보급하는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사회복지 모델의 전형이다. 보금자리라는 명칭이 말해주듯 국민적 관심과 기대도 컸다. 조선 숙종 때 간행된 중국어 어휘 사전인 역어유해(譯語類解)에 따르면 보금자리의 옛말은 보곰자리다. 오목하다는 의미의 보곰과 자리가 합쳐진 말로 새 둥지를 뜻하는 巢(소)에 대한 풀이다. 본질적으로 집은 새가 알을 낳거나 깃들이는 곳이라는 의미다.

감사원이 서민 주거 안정 정책 추진 실태를 감사한 결과 오피스텔 24채를 보유하거나 연소득 3억 원이 넘는 사람들이 영구임대주택에 대거 입주해 관리가 매우 부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서울 소재 장기전세주택 입주자 1천637명의 소득을 확인해 보니 월 700만 원 이상인 사례를 비롯해 37%가 도시 근로자 평균 소득 이상으로 밝혀졌다. 입주자 자산과 소득 수준을 확인하지 않아 벌어진 결과로 서민 주거 안정이라는 취지를 무색게 하는 일이다.

실태가 이렇자 국토부가 최근 보금자리주택 임대 청약 자격자에 대한 소득'자산 기준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박근혜정부는 보금자리주택 분양 공급 축소 등 MB정부의 주택 정책과 거리를 두는 2013~2022 장기 주택 종합 계획을 오는 8월 발표할 예정이다. 문제는 사업 취지를 충실히 살리는 면밀한 운영과 일관성이다. 집 없는 서민들이 새 둥지만 한 집 얻을 기회마저 박탈된다면 어떻게 정부를 신뢰하겠나. 정부의 핵심 사업이 일개 대학 건학 정신만도 못하대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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