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순재의 은퇴일기] 이기적인 부모

머리가 희끗희끗한 작가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히말라야를 좋아해서 여러 번 다녀온 그는 그곳에서 노새를 보는 순간 그냥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고 했습니다. 짐의 무게로 초라하고 볼품없이 늙어버린 노새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정의 달입니다. 방송에서는 이런저런 이들이 어머니 아버지를 떠올리며 눈물을 훔칩니다. 잘 해드리지 못한 것을 통탄하고 뒤늦은 깨달음에 가슴 아파합니다.

이젠 5월의 풍경도 달라졌으면 합니다. 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하면 행복한 웃음이 절로 피어나는 그런 세상이었으면 하는 것이지요. 부모님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떠올리고 그들의 당당함을 웃으며 이야기하는 세상 말입니다.

아마도 많은 부모들이 자녀에게 당당하게 요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취직하기도 힘들고 집 장만도 어려운 마당에 부모가 돼서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무엇을 요구하느냐고 되물을 수도 있겠습니다.

외국에서는 자녀에게 재산을 잘 물려주지도 않지만 물려주는 조건으로 평생 월 일정액을 요구하는 서약서를 작성하기도 합니다. 거래처럼 보이나요. 하지만 이젠 우리 부모들도 자식들에게 당당하게 요구할 것을 권합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 자식을 대학까지 보내려면 3억원이 넘는 비용이 듭니다. 아이가 둘이면 자신의 노후대책 마련이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이 정도면 요구할 자격 충분하지 않습니까.

50대의 경우 자녀들의 상당수가 아직 취업을 못해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에다 기대수명이 길어진 노부모 세대를 돌봐야 합니다. 평생 초라한 노새처럼 살아가야 할 확률이 높은 것이지요.

저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소득의 일정액을 무조건 부모님 통장에 입금시켜야 한다고 가르쳐왔습니다. 오랫동안 세뇌를 시켰기 때문인지 돈 버는 첫 달부터 스스로 알아서 입금하고 있습니다. 물론 볼멘소리도 하지요. '친구 중 어느 누구도 이런 강제조항을 요구하는 부모님은 없다'고 말입니다.

이왕 노새로 살아가야 한다면 자식 눈치 보며 사는 초라한 노새이고 싶지 않습니다. 요구할 것은 요구하는 당당한 노새가 되어 스스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5월의 다짐입니다.

너무 이기적인가요?

김순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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