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만 자라는 게 아니에요. 함께 울고 웃으며 교사들 마음도 함께 자랍니다."
가정과 학교에서 정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은 방황하기 십상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문제아'라는 낙인이 찍히고 상황은 더욱 나빠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변태석(52) 교사의 일터는 이런 중학생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사랑을 가르쳐주는 학교다. 대구시교육청이 대구고등학교에 운영을 맡긴 '마음이 자라는 학교'(대구시 북구 국우동)가 그곳이다.
◆'초심으로 돌아가기', 변 교사의 선택
마음이 자라는 학교는 지난해 9월 문을 열었다. 학교 추천과 학부모 동의를 받은 아이들을 모아 6주 동안 교과 학습 외에도 자전거여행반, 밴드반 활동을 하고, 등산과 인권 교육 등도 진행하고 있다. 여태까지 60여 명의 아이들이 이곳에 발을 들여놨고 그 가운데 42명이 수료했다. 현재 이곳에 다니는 아이들은 17명. 변 교사를 비롯해 14명의 교사들이 23일 수료식 때까지 이 아이들을 챙긴다.
이 프로그램이 운영된다는 소식을 듣고 변 교사가 참여하겠다고 마음을 굳힌 것은 풋내기 교사 시절 초심이 떠올라서다. 1987년 처음 교단에 섰던 그는 지금도 여전한 입시 위주 교육 등 학교 현장의 모순점을 개선해보려는 마음에 1989년 전교조 창립 때 회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다 해직돼 5년여 동안 야인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념 논쟁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학교 현장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전교조에 몸담았어요. 아이들을 잘 가르쳐야 한다는 교사로서의 사명감과 젊은 혈기가 넘칠 때였죠. 쏜살같은 세월 속에 옛 생각도 아련해질 즈음, 이 프로그램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내가 교사라면 지금부터라도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방황하는 아이들을 외면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변 교사는 남은 교사 생활을 이곳에서 마무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대구 각 지역에서 외진 곳으로 등교해야 하는 터라 이 학교는 12인승, 25인승 버스 두 대를 운행한다. 변 교사는 그중 12인승 버스 운전대를 잡고 매일 아침 아이들을 만난다. 일반 학교에선 일탈하는 소수의 아이들을 챙기기 어렵지만 이곳에선 그것이 일상이다. 힘들지만 아이들 표정이 시간이 갈수록 밝아지는 걸 보면서 변 교사는 힘을 낸다.
"아이들이 일탈하는 것은 가정과 학교에서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짧은 기간 완전히 변하긴 어렵겠지만 행복감만이라도 맛보게 해주고 싶어요. 아이들이 행복을 찾아갈 수 있도록 길잡이가 돼주는 것이 교사의 책무이고 제 남은 역할이라고 봅니다."
◆'인내와 믿음으로', 아이들에게 사랑 베풀기
"처음엔 솔직히 거친 아이들을 잘 챙길 수 있을지 걱정이 컸어요. 나름 말썽이라면 각 학교의 대표 선수들(?)이니까요. 아니나 다를까 처음 학교 문을 연 뒤 2, 3주는 아이들이 도통 말을 듣지 않고 삐딱하게 나와 너무 힘들었어요. 한동안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잘 정도로 고민했죠. 과연 이 길이 맞는지…."
변 교사가 함께한 교사들과 머리를 맞댄 뒤 내린 결론은 정성을 다해 대하고 기다리자였다. 아이들을 가능한 한 빨리 바꿔 보겠다는 욕심을 버리니 마음이 편해졌다.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도 더 자연스러워졌다. 그렇게 3주가 흐르자 아이들이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었다. 지금 이 학교에 나오는 아이들과도 그렇게 가까워졌다.
"이 아이들은 잘못을 인식한 뒤 바뀌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도 수시로 실수를 합니다. 감정 조절에 미숙한 데다 워낙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들이다 보니 더욱 그랬죠. 그렇다고 실망하면 안 됩니다. 경험을 통해 이 아이들과 소통하려면 기다림이라는 단어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요."
변 교사는 지난 연말 아이들과 함께 담근 김장 김치를 학교 인근 홀몸노인들에게 전했다. 지난 어버이날에는 장조림, 계란 부침 등 반찬을 만들어 보내기도 했다. 덕분에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던 이웃 주민들과의 관계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자신들을 반기는 이들을 보며 아이들의 얼굴에도 조금씩 웃음꽃이 피었다.
변 교사는 이곳을 거쳐 간 아이들이 잘 지내는지 한 번씩 찾아보곤 한다. 아직 거친 구석이 남아 있지만 대부분 아이들은 달라졌다는 걸 느낀다. 그는 아이들이 스스로 변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낯선 영역에 첫발을 디디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만은 일깨워줬으면 좋겠어요. 기대만큼 잘 해내지는 못하더라도요. 교사와 부모 모두 아이를 포기해선 안 됩니다. 자신을 믿고 있다는 걸 알게 해주고 기다려줘야 합니다. 그게 어른들의 역할입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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