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은 우리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지만 판에 박힌 행위에 붙들려 있을 수는 없다. 그것은 개발되고 심화되어야 한다. 특히 우리 자신과는 여러모로 다른 사람들을 상대할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런 사람들과 협력한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 (리처드 세넷의 '투게더-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중에서)
'협력'이 화두다. 2015년 국제 학업성취도평가(PISA)에도 협업수업 평가가 들어간다. '협력'은 공동체 최고의 에너지이기도 하다. 삶의 현장에서는 자연스럽게 경쟁의 논리가 개입된다. 거기에는 반드시 승자와 패자가 존재한다. 문제는 승자가 모든 시간과 공간을 독식하는 현상이다. 패자가 다시 경쟁할 수 있는 기회가 없으면 패자는 영원히 절망의 공간에서 시간을 영위할 수밖에 없다. 결국 패자는 패자끼리, 승자는 승자끼리 연대하는 갈등관계가 조성된다.
'투게더'를 쓴 이 시대 최고 지성인 서넛은 그러한 '연대'가 오히려 협력을 방해했다고 단언했다. '연대'가 '협력'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믿었던 나에게는 무척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가 옳았다. '연대'라는 말은 묘한 의미를 담고 있다.
예전에 티피코시라는 의류 광고가 있었다. '맛이 좋아 맛동산'과 같은 직접적인 구매 광고를 넘어 이미지 광고를 이끈 것이었다. 이 광고에는 당시 스타였던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온다. 그들은 티피코시 의류를 입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관객들도 모두 티피코시를 입고 있다. 이 옷이 좋으니까 사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도 티피코시는 불티나듯 팔렸다.
광고에서 사용한 방법이 바로 '연대'다. 이 광고의 진실은 '티피코시를 입어야 서태지와 아이들의 팬이다'를 넘어 '티피코시를 입지 않으면 서태지와 아이들의 팬이 아니다'는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다. 팬클럽이 지니고 있는 연대는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에 대한 사랑만이 아니라 그 스타와 라이벌 관계에 있는 다른 스타에 대한 적대감을 동시에 내포한다.
사회 구성원들에게 존재하는 연대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 공동체가 연대를 한다는 것은 다른 공동체와의 경쟁이라는 전제와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오히려 연대는 경쟁의 조건이 되면서 협력은 밀려난다. 더욱이 다른 공동체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같은 공동체 안에서도 끊임없는 경쟁이 일어날 소지가 크다. 그런 점에서 공동체의 리더가 지닌 철학과 조직 관리의 방법은 매우 중요하다.
리더가 범하는 가장 일반적인 오류는 이미 결론을 정한 다음에 구성원들의 의견을 묻는 일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내 생각을 따르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그러다 보니 겉으로는 대화의 양상을 띠지만 내면적으로는 지시와 설득을 담고 있다.
식견과 비전을 지닌 리더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그 같은 리더가 추진하는 정책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책을 실행하는 주체는 리더가 아니라 구성원들이기 때문이다. 정책 결정 과정이 정책의 내용보다도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책의 성공은 구성원들의 능동적 참여에 달려 있다. 정책의 주체가 되지 못한 구성원들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 지시를 그대로 수행하다 보면 정책이 발전적으로 승화되지 못한다.
정책이 내면화되지 못하면 심화된 성과가 나올 리 없다. 정책은 사람을 위해 시행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어제의 정책이나 오늘의 정책, 그리고 내일의 정책이 크게 다르지 않다. 당연히 현재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정책이 아니라 심화된 정책이자 지속가능한 정책이다. 지속가능한 정책이 되기 위해서는 구성원 모두가 정책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교실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교사만이 아니라 학생들도 수업과정의 주체다. 그것이 바로 '협력'의 전제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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