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강성률의 줌인] 고진감래 류승룡

이달 9일 열린 제49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배우 류승룡이 영화 부문 최고상인 대상을 수상했다. 이 상을 두고 네티즌들의 반응은 대부분 일치했다. 받을 만한 배우가 받았다는 것. 그는 지난 일 년 동안 '내 아내의 모든 것''광해, 왕이 된 남자''7번방의 선물' 등 세 영화에 출연해 세 편 모두 흥행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정말로 받을 만한 배우가 받은 것이다.

놀랍게도 세 편의 장르가 모두 다르다. 코미디, 사극, (코믹성 있는)가족 드라마. 이말을 다르게 하면, 세 편의 연기 패턴이 모두 다르다는 말이다.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는 남미풍의 진지한 카사노바 역을 맡았고,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는 왕의 최측근인 허균이라는 벼슬아치를 재현했으며, '7번방의 선물'에서는 용구라는 지적 장애인 역할을 소화했다. 허균이라는 진지한 책사의 역할과, 용구라는 바보의 역할은 전혀 상반되는 역할인데, 류승룡은 큰 어려움 없이 연기를 훌륭하게 소화했다.

어떻게 보더라도 지난 일 년은 류승룡의 해였다. 세 편 모두 흥행을 한 정도가 아니라 두 영화가 1천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그는 단숨에 '2천만 배우'가 된 것이다. 그의 이런 성공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는 '고진감래형 배우'이다. 나이 44살에 이런 위치에 오르기까지 그는 숱한 고생을 했다. 연극을 하다가 영화로 넘어온 것이 2005년의 '박수 칠 때 떠나라'이니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35살이라는 나이가 될 때까지 그는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며 서러움의 빵을 먹었다. 그 기간 절망하지 않고 탄탄한 연기력을 쌓은 노력 덕에 지금의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그의 영화 인생은 탄탄하지 않았다. 2005년 '박수 칠 때 떠나라'로 스크린에 데뷔한 이래 류승룡은 임권택 감독의 '천년학'등에도 출연했지만 인지도를 크게 올린 건 아니었다. 두 편의 영화에 등장한 류승룡을 처음 보았을 때, 그리 탁월한 연기를 펼친 것도 아니고, 특별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것도 아닌, 연극을 오래해서 연기의 기본은 갖춘 배우가 영화 판에 등장했다는 것 정도의 인상을 받았다. 훗날 류승룡이 이런 급의 배우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오랫동안 류승룡은 괜찮은 조연 정도에 머물러 있었다. 동갑내기인 차승원, 황정민, 유해진 등이 주연으로 우뚝 설 때에도 그는 여전히 조연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류승룡이 그의 이름을 충무로에 확실히 알린 시기는 '최종병기 활'과 '고지전'을 개봉한 2011년이었다. 꽤나 늦은 시기인 셈. '최종병기 활'에서 청나라 장수 쥬신타 역을 맡아 거의 완벽에 가까울 만큼 냉혹한 무장의 모습을 스크린에 살려 놓았고, '고지전'에서는 북한 장교 현정윤 역을 맡아 전쟁의 이데올로기에 희생된 인간의 쓸쓸한 초상을 소름 끼치게 소화했다. 이때부터 류승룡이라는 배우는 충무로의 블루칩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이 정말로 중요한데, 이후 그는 캐스팅되는 영화마다 성공시키는 마법을 선보였다.

'광해, 왕이 된 남자'에 류승룡이 캐스팅 된 것은 이런 흐름에서 가능했다. 그러나 바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주연급인 조연 류승룡은 자신의 역할을 다했지만, 1천만 영화의 신화는 1인 2역을 한 이병헌의 것이었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이 흥행하고 류승룡도 인지도를 높였지만, 코미디 역을 소화한 조연에 불과했다. 그러나 '7번방의 선물'에서 이 모든 것을 뒤엎어 버렸다. '7번방의 선물'은 규모가 큰 영화가 아니다. 40억원 정도의 중간급 예산의 영화이다. 류승룡을 제외한 박원상, 오달수, 김정태, 정만식, 박상면 등 명품 조연들과 조화를 이루는 소박한 영화였다. 그런데 류승룡은 더없이 좋은 조연과의 조화 속에서 관객들의 눈물을 쏙 빼놓았다.

나는 영화 연기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바보 연기라고 생각한다. 심각하고 진지한 연기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바보 연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까지 진지한 역을 했던 류승룡에게 저런 면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 것이 '7번방의 선물'이었다. 바보 역할을 잘한다는 것은 어떤 역할도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류승룡은 그런 경지의 배우가 되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배우가 있다. 외모가 출중한 배우와 연기를 잘하는 배우. 다 아는 것처럼, 류승룡은 후자에 속한다. 그는 결코 잘 생긴 얼굴을 가지지 못했다. 키가 큰 것도 아니고 몸매가 좋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목소리가 탁월한 것도 아니다. 게다가 나이도 많다. 그런데 그는 이 모든 단점을 훌륭하게 극복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연기자는 연기로 승부해야 한다. 그 외 무엇을 연기자에게 더 바랄 것이 있는가! 우리가 류승룡이라는 배우에게 매혹되는 이유는 그가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고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나는 류승룡 같은 배우가 영화 판에 많이 등장하기를 고대한다. 류승룡은 희망을 주는 연기자이다.  

강성률 영화평론가, 광운대 교수 rosebud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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