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명수의 집중 인터뷰] 이한구 前새누리당 원내대표

1년간 새벽 출근, 자정 퇴근…"박근혜 대통령 탄생 역할한 것이 큰 보

이한구 전 원내대표가 40년 전 부인에게서 약혼선물로 받은 오래된 장지갑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한구 전 원내대표가 40년 전 부인에게서 약혼선물로 받은 오래된 장지갑을 들어 보이고 있다.

"대통령 선거에서 이길 수 있도록 (원내에서) 역할을 한 것에 대해 가장 보람 있었다고 생각한다. 19대 국회를 '쇄신국회'로 만들기로 하고 상당한 정도로 발동을 건 것도 성과다. 또한 정부 출범 초기에 많은 정부기관들이 우왕좌왕할 때 우리가 중심을 잘 잡아서 위험스런 지경까지 가지 않는데도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국회쇄신과 개혁은 법률제정 형태로 끝을 봐야 하는데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 물러나게 된 것은 아쉽게 생각한다.

새 정부 출범 초기 거시적인 경제정책을 할 수 있는 기반으로 추가경정예산안이 처리되고, 금리도 인하되고, 부동산 관련 정책도 법적 뒷받침이 됐으니까 이제부터는 정부가 잘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15일 최경환 의원에게 새누리당 원내 지휘봉을 넘겨 준 이한구(67) 전 원내대표가 밝힌 소회다.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을 두 차례나 역임하고 국회 예결위원장과 윤리특별위원장 등을 지낸 경제전문가이지만 고도의 정치력을 요구하는 집권여당의 원내대표는 '미스터 쓴소리'로 불리던 그에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지난해 5월 그가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취임하자,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휘둘리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선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특유의 소신을 바탕으로 대선 국면에서의 정기국회를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박근혜 대통령 탄생에 일조했고, 국회선진화법이 발효됐지만 정부 조직법 개정안을 처리하는 데도 성공했다.

이 전 원내대표가 겪은 최대의 정치적 위기는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 사태였다.

"정 의원 체포 동의안 부결 시 국회 쇄신작업에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자진사퇴를 선언했다. 19대 국회 초반 우리가 세비를 반납하면서 '새누리당이 확실히 달라졌구나' 하는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있었는데, 체포동의안 문제에 걸려서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

사퇴를 선언한 것은 '이럴 바에야 계속 원내대표직을 해봤자 판을 바꾸기 힘들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사퇴하고 나니까 그것이(체포동의안이) 얼마나 중요한 사안이었는지 동료의원들이 깨달은 것 같다. 닷새 만에 복귀해서 다시 국회쇄신부분에 대해 여야가 합의를 이끌어내는 등 탄력을 잃긴 했어도 국회 쇄신을 상당 부분 진행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는 "새벽에 출근해서 자정이 지나야 퇴근하는 '올빼미' 생활을 1년 동안 해왔다"며 "우선 잠 좀 푹 자고 재충전의 시간을 갖겠다"고 말했다.

향후 행보에 대해서는 지난 대선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 역할을 하면서 새 정부의 경제정책 수립에 일정부분 역할을 했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경제부총리 등 경제사령탑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흘러나온다. 지역정치권에서는 그를 차기 대구시장 후보군에 올려놓기도 한다.

이와 관련, 그는 "대구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것이 썩 기분이 좋지 않다"며 대구시장 출마설을 일축하고는 "지금 시점에서 제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대구에서) 일자리를 만들고 성장동력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판단하건대 대구시가 안고 있는 최대의 문제는 산업이 없어서 일자리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이라면서 "그 산업기반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 그것도 빨리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 대구시를 이끌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차기 대구시장 후보의 조건과 관련해서도 ▷중앙정부와의 네트워크가 좋고 ▷기업에도 (투자유치 등의) 설득력을 갖추고 ▷공직사회를 뒤바꿀 수 있는 실용적인 능력이 있는 인사여야 한다고 못 박았다. 정치적 경력을 쌓기 위해 출마하는 사람은 배제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이런 조건을 갖춘 50대 후반 정도의 인사를 찾아내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그는 "외부에서 그런 사람을 찾더라도 경선을 한다면 나서지 않을 것이며 경선이 아니라 추대하는 형식으로 시장 후보를 내놓은 것이 바람직하다"며 자신은 이런 일을 뒤에서 백업해주는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가 밝힌 대구시장 후보론이 확산될 경우, 내년 대구시장 선거구도는 현 김범일 대구시장과 이 전 원내대표가 추천하는 새로운 인물 간의 대결양상으로 치열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높아 주목되고 있다.

-현재의 정당구조상 당대표와 원내대표의 역할이 이원화돼 있지만 조율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원내대표'라는 제도가 만들어진 것은 18대부터다. 그 전에는 당대표가 지명하거나 당대표 산하에 있었다. 이게 바뀌면서 당대표와 원내대표가 대등한 관계로 역할을 하게 됐는데 정치적 영역에서 당대표가 우선권이 있다면 원내 이슈에 대해서는 원내대표가 우선권이 있는 그런 것이다.

민주당과 우리 당은 조금 다르다. 민주당에 비해 우리당 원내대표의 지위가 높고 영향력도 크다.

이런저런 역사가 있기 때문에 권한을 행사하려 들면 자꾸 갈등이 생기기도 하지만 적절하게 서로 양보해가면 큰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임기가 당대표는 2년인데 비해 원내대표는 1년이라서 영향력이 떨어지는 것 아닌가.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민주당에서는 원내대표가 뭘 협상을 해도 당내 일각에서 인정해주지 않고 뒤엎는 일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 우리 당은 그렇지 않다. 임기가 길면 짧은 것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원내대표는 두 가지 성격을 갖고 있다. 그중 하나가 의원들을 끌고 가는 것이지만 또 다른 하나는 의원들을 대표하는 것이다.

그래서 의원들 뜻이 어디로 가 있다고 하면 본인은 싫어도 그걸 해줘야 한다. 무엇보다 여당 원내대표는 정부가 필요한 입법을 얼마나 잘 뒷받침하느냐가 제일 중요하다. 정부가 예산을 필요로 할 때 처리해주는 그런 일을 하는 데는 임기와 상관없다."

-소신과 달라도 다수의 뜻에 따라 혹은 야당의 요구에 따라 법안을 처리한 적이 있었을 것 같다.

"여야가 합의했지만 개인적으로 반대표를 던진 경우가 하나 있다. 대부분은 필요한 만큼 조정을 해서 처리했다. 정 싫으면 본회의에 상정시키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잘못된 법안이라고 생각하더라도 많은 의원들이 그렇게 간다면 인정해줘야 한다."

-대선을 앞두고 원내대표를 하느라고 고생을 많이 했다. 새 정부 첫해의 원내대표와는 역할이 다르지 않나.

"대선 기간이어서 더 힘들었다. 대선 때 원내대표는 다른 기간보다 일이 두 배 정도로 많다. 특히 재집권에 성공했지만 정부 세팅이 덜 됐기 때문에 정부의 중심을 잡아줄 사람이 없어서 굉장히 위험한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고민을 해서 결정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정책위의장이 한동안 공석이어서 선거도 준비하고 하는 와중에 두 가지 일을 다 맡아서 하느라고 굉장히 힘들었다. 어려운 시기에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을 동시에 한 경우는 처음일 것이다.

또 정부 출범 후 짧은 기간에 진영 전 정책위의장이 정부로 가면서 나성린 의원을 대행시켜서 나름대로 많은 도움 받았다. 그러나 대행체제로 있을 때는 한계가 있다. 육체적으로는 그때가 가장 힘들었다."

-지금 민주당은 구심점이 약하다.

"어떻게 당 체제가 정비될지 모르지만 여야 관계가 지금까지와는 다를 것이다. 선거할 때는 여야 관계가 전쟁상태와 다름없다. 그런 전쟁상태에서는 여야 간에 심한 말이나 행동이 오가기 마련이다. 그것을 극복하면서 협상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상태는 아니다.

매사를 극단적으로 처리할 이유는 없다. 다만, 우리 때는 정부가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줘야 하는 시대였다면 이제부터는 정부가 열매를 보여주는 시기다. 그렇기 때문에 상당히 여러 분야에서 마이크로(micro) 정책을 실시할 수 있도록 백업을 해줘야 한다. 그것을 하려면 정부에 싫은 소리도 제법 해야 한다. 앞으로는 싫은 소리도 해가면서 결과물이 나오도록 유도를 해야 한다. 그것이 신임 최경환 원내대표의 역할이다.

그럴 때 민주당이 어떤 태도를 취할까, 이것이 궁금하다. 추수해야 할 때 야당이 전쟁하는 기분으로 덤벼들면 진짜 곤혹스러울 수 있다."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후 국회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다.

"더 나쁜 것은 중요한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한쪽에서 주장하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도 들어줘야 하고 그래서 지난번에도 그렇게 몇 가지 법안을 바터했다. 그게 잘못된 것인 줄 알면서도 몇 가지 법안을 받아줄 수밖에 없었다. 문제가 있지만 전체를 위해 할 수 없다며 넘어간 것이다. 추경예산안 처리 때도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할 수 없다.

그런 점에 대해서는 언론에서 실상을 알아야 한다."

-당'정'청의 관계는.

"정권교체기와 새 정부 출범기의 관계가 다르다. 나는 정권을 재창출하고 정부 조직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했고 일할 수 있도록 준비해주는 일을 했다.

지금은 당'정'청이 삼위일체가 돼서 손발을 맞춰야 한다. 그래서 지난번에 우리가 요구해서 장'차관과 청와대 수석, 국회 상임위 간사. 상임위원장들이 분야별로 네트워크를 만들려고 모였다.

새 정부 초기에는 대통령의 손발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니까 우리가 백업해줄 수밖에 없었다.

손발이 다 생기면 당의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 정당은 국민의 지지를 받아서 사는 조직이다. 끊임없이 국민들의 뜻을 국정에 많이 반영되도록 요구할 수밖에 없다."

서울정경부장 diderot@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