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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인물] 유일하게 독립운동 나선 왕족 이강

'우리나라의 임시정부에 합류해서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는 동시에 조국의 독립과 세계평화에 헌신하겠다.' 1919년 3·1만세운동 후인 11월 상해 임시정부로 망명하려다 일제 감시망에 걸려 실패한 고종 황제 아들 의화군(義和君) 이강(李堈'1877~1955)은 임시정부에 보낸 글에 일제에 대한 복수와 조국 독립의 열망을 담았다. 왕족 가운데 유일하게 독립운동에 발벗고 나섰으나 일제 땐 감시로, 광복 후엔 황실 배척정책을 편 이승만 정부의 견제로 불운한 생을 마쳤다.

그는 1895년 오늘 6개국 특파대사로 임명돼 영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 오스트리아를 차례로 방문하는 특사로 활약했다. 일본에도 파견되는 등 국제 정세에 관심 많았던 그는 1900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오하이오주 웨슬리언대학(Wesleyan University)과 버지니아주 로노크대학(Roanoke College)에서 공부해 국제 정세에 민감했다. 유학 중 의친왕(義親王)에 책봉됐지만 1910년 나라가 망하자 공(公)으로 강등됐고 독립에 강한 열망을 가졌다.

3·1운동에 이은 2차 만세운동 때 독립선언서에 왕족으로서는 유일하게 그의 이름이 올랐고, 상해 망명 미수사건도 그런 맥락이었으며, 1921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5대 열강회의 때 조선의 독립을 촉구한 건의서에서도 왕족 대표인 그의 이름이 나오는 이유다.

정인열<서울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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