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동순의 가요 이야기] 기생 '홍도' 노래의 원조 김영춘(상)

연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주제가…기생의 고된 삶 다뤄

다정한 벗들끼리 어울려 술판이 무르익는 밤이면 어김없이 어깨동무를 하고 비장한 표정으로 부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런 날 부르는 이런저런 단골 곡목들이 많이 있지만 유독 이 노래를 부를 때만큼은 이상야릇하게도 옛 학창시절의 교가를 합창하듯 자못 결연한 표정이 되어 '홍도야 울지 마라 오빠가 있다~~'를 구성지게 불러 젖히던 모습들이 떠오릅니다.

세월은 참 많이도 흘러갔습니다. 어떤 익살스런 친구는 '홍도야 떨지 마라 오빠가 있다'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지요. 그러다 보면 또 불씨가 살아나듯 분위기가 새로 살아나서 '홍도야 울덜 말아라! 오빠가 있다' 라며 큰소리로 흥겨운 고갯짓을 해대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이제 그 친구들 모두 어디에 가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요?

추억의 노래 '홍도야 우지마라'. 제목은 모르는 이 없지만 이 노래를 부른 가수나 작사, 작곡가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1938년 서울 동양극장에서는 연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가 공연되었습니다. 이 극장 소속의 전속극단이었던 청춘좌(靑春座) 팀이 회심의 역작을 무대에 올렸던 것이지요. 신파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에 참여한 제작진들은 화려했습니다. 당시 최고의 극작가 중 한 사람인 임선규가 대본을 썼고, 차홍녀'전옥'황철 등의 으뜸 배우들이 출연했으니 장안의 화제가 될 만도 했습니다.

이 곡의 배경이 되었던 연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의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오빠에게 공부와 출세를 시켜주기 위해 홍도는 스스로 자청하여 기생이 되었습니다. 화류계 생활에서 갖은 고생으로 학비를 모아 오빠를 졸업시켰지요. 여동생의 도움으로 학업을 마친 오빠는 순사가 되었습니다. 이후 홍도는 화류계에서 빠져나와 시집을 가지만 삶이 순탄하지 않습니다. 홍도의 과거를 알게 된 시어머니는 온갖 학대로 홍도를 괴롭힙니다. 어느 날 홍도는 실성한 상태에서 시어머니에게 칼을 휘두르고 살인미수로 잡혀가게 되는데 이때 홍도의 손에 수갑을 채운 순사는 뜻밖에도 홍도의 오빠였던 것입니다. 오! 이런 운명의 장난이 또 어디 있으리오, 통곡하는 홍도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쓰러질 때, 오빠는 홍도를 위로하며 노래 한 곡을 부릅니다. 그 노래가 바로 '홍도야 우지마라'였는데, 이 장면에서 관중석은 온통 눈물바다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연극을 본 어느 기생은 자신의 처지와 현실이 너무 비관이 되어 마침내 한강에 투신자살을 했는데, 이 사연이 신문에 보도되어 연극과 노래는 더욱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을 팔고 사는 꽃 바람 속에/ 너 혼자 지키랴는 순정의 등불/ 홍도야 우지마라 오빠가 있다/ 안해의 나갈 길을 너는 지켜라

극장 앞과 주변은 온통 화류계의 슬픈 사연을 다루었던 이 연극을 보러온 기생들로 넘쳐났습니다. 어느 날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500여 명의 기생이 아예 손수건을 준비하고 한꺼번에 몰려와서 이 연극을 보며 흐느꼈는데, 이 때문에 그날 밤은 서울 장안 권번이 텅텅 비었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도 이 연극이 많은 기생들에게 그토록 화제가 되었을까요? 그 까닭은 이 노래가 기생들의 박복한 삶, 고달픈 처지를 마치 그림처럼 생생하게 다루었기 때문이지요. 공연의 전후 사정이 이러했으므로 이 연극이 한국 연극사에서 최고의 장기공연 작품 중 하나로 기록된 것은 당연한 결과로 보입니다. 훗날 어느 비평가는 이 연극을 일컬어 '여성 수난극의 전형, 한국형 최루극(催淚劇)의 원조'라 불렀습니다.

연극에서의 이러한 폭발적 인기에 힘을 얻어 영화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가 제작되었는데, 이 영화의 주제가로 올린 곡이 바로 '홍도야 우지마라'였습니다.

영남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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