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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 세상 별난 인생] 봉사맨 쌀집 사장 성세경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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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비우고 종일 봉사현장…좋은 걸 어떡합니까

마흔다섯 살 성세경 씨, 그는 쌀집 사장님이다.

그러나 쌀집에는 그가 없다. 하루가 멀다하고 봉사하러 나가 가게를 비우기 때문. 이제 봉사가 그의 직업이 됐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합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칭찬받을 만큼 하지도 않았는데요, 뭘. 생활의 일부가 됐어요. 그리고 이제는 멈출 수 없어요."

그는 봉사하는 것이 자기만족이라고 했다. "희생요? 그냥 하는데 희생이라고 하면 부담스럽지요. 습관처럼 하고 있어요. 하고 나면 내 마음이 편하고 즐겁고 행복하니 자기만족이죠."

성 씨는 (사)사랑해 희망봉사단에서 일하고 있다. 봉사단은 무료급식을 하는 '사랑해 밥 차'와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해 공연을 하는 '예술단'을 운영하고 있다. 성 씨는 일주일에 네 번 하는 급식봉사에 두 번, 예술단에 두 번 정도 참가하고 있다. 아침부터 준비를 해야 하는 무료 밥 차는 오전 9시부터 시작해 한쪽에서는 배식을 하고 다른 쪽에서는 설거지를 하면서 눈코 뜰 사이 없이 일을 해도 뒷정리가 끝나면 오후 2, 3시가 훌쩍 넘는다. 예술단 역시 무대를 꾸미고 공연을 마치면 하루가 후딱 지나간다. 공연을 하기 위해 단원들과 연습도 틈틈이 해야 한다.

그래도 그는 하루도 빼먹지 않는다. 아무리 사용해도 아프지 않는 건강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 다닐 때 럭비 선수였어요. 타고난 건강 체질이라 어지간히 움직여도 힘들지 않아요." 그는 선수생활을 할 때 키 170㎝에 몸무게 90㎏이나 나갔다. 현재는 78㎏.

"봉사도 하고 다이어트도 되고 얼마나 좋아요."

그는 봉사할 때면 하늘이 돕는 것 같다고 했다. "무료급식 10여 년 동안 밥 먹는 시간에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았어요. 정말 신기하죠. 몸이 지치고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밥 먹을 때는 하늘도 돕는 것 같아요."

성 씨는 매번 무료급식을 하던 어르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걱정이 된다고 했다. "급식 때마다 오던 어르신 얼굴이 안 보이면 걱정이 되죠. 몸이 안 좋으신지? 아니면 돌아가신 건지? 다음 급식 때 나오면 안심이 되지만 …."

작년부터 급식하러 오는 어르신 얼굴이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예전에 거의 보이지 않던 50대가 많이 보인다는 것. "자식에게 다 퍼주고 일찍 퇴직해 노후 준비가 안 된 베이비붐세대인 것 같아요. 올 들어 10%는 증가 한 것 같아요."

이들은 오전 9시가 넘으면 줄지어 기다린다고 했다. "오전 11시 30분부터 배식이 시작하는데, 2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돼요. 그만큼 할 일이 없다는 뜻이죠. 밥 한 끼 먹기 위해 2시간을 기다린다고 생각해 보세요. 안타깝죠."

성 씨는 예술단에서 드러머로 변신한다. 성 씨가 예술단에서 맡고 있는 부문은 전자 드럼. 드럼은 고교시절 배웠다. "고교 때 배운 드럼이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은 몰랐어요. 열심히 북을 두드려 공연도 빛내고, 스트레스도 풀고 얼마나 좋아요. 우리 예술단은 요양원과 장애인시설 등 공연 요청이 오면 무조건 달려갑니다. 불러 주세요."

하루가 멀다하고 봉사활동을 하는 성 씨지만 집에선 빵점 남편이고 아버지다. "제가 꽤 가부장적인 남자거든요. 처음에는 아내도 아이들도 이해할 수 없다며 반대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내와 아이들이 이해해줘 이제는 고3과 중3인 아들도 무료급식 봉사를 함께해요. '살아 있는 교육' 을 절감한다"고 했다. 더불어 사는 것은 혼자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요즘에는 아내도 가끔 따라나선다고 했다. 성 씨는 "그래도 남을 위해 봉사하는 착한 남편으로 알고 있을 것"이라며 웃었다.

사랑해 희망봉사단 최영진 이사장은 "성세경 씨는 한결같은 사람이다. 시작할 때와 똑같다. 사고는 긍정적이다. 할 수 없다, 안 됩니다란 말 들은 본적이 없다"고 말했다.

성 씨는 외롭지 않다고 했다.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아요. 급식 때마다 자신의 일처럼 나서는 자원봉사자들은 성 씨의 든든한 후원자들이다. 쌀가게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거래처 사람들이 좋은 데 쓰라며 식자재나 그릇 등을 많이 내어 준다"고 했다. 봉사라고 시작한 지 14년. 그러나 성 씨는 '보람'이란 단어에 대해서는 망설인다. 어떤 의도나 어떤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 씨에게 봉사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생활의 한 부분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아직도 "봉사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성 씨에게도 바라는 게 있다. "2층 건물이 하나 있었으면 해요. 1층은 무료 급식소로, 2층은 사무실과 연습실로 사용하게요. 임대료 걱정 없이 말이에요."

2000년 3월. 봉사하는 사람을 만나 주저 없이 봉사자의 길로 들어선 성세경 씨. 그는 오늘도 봉사활동으로 하루해가 짧다.

"봉사는 남을 돕는 기쁨보다 내가 얻는 기쁨이 더 커요."

사진·박노익 선임기자 noi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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