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문호, 오스카 와일드의 장편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은 영원한 젊음을 유지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 한 청년의 이야기다. 자신의 초상화가 자기 대신 나이를 먹게 하는 조건으로 영혼을 팔아버렸다가 결국 파멸한다는 줄거리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려보이고 싶은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다. 최근에는 이 같은 심리를 반영하듯 '예쁘다는 말보다 어려보인다는 말이 더 듣기 좋다'는 광고 카피가 유행하기도 했다. 갈수록 거세지고 있는 '안티에이징'(노화 예방) 열풍을 들여다봤다.
◆피부 관리받는 남성 크게 늘어
'안티에이징'은 노화를 늦추거나 완화하는 기술'상품을 가리킨다. 예전에는 연예인이나 부자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일반인, 특히 남성들 사이에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예술인들의 창작 스튜디오이자 주민들의 문화체험공간인 성주 '금수문화예술마을' 직원들은 지난해 연말 망년회를 피부관리숍에서 가졌다. 여성 직원들이 꽤 있는데다 흥청망청 술을 마시는 대신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시간을 가져보자는 취지였다.
반응은 꽤 좋아 이달 중에 남자직원끼리 다시 한 번 찾기로 했다. 직원 전봉진(37) 씨는 "예전에는 피부관리를 받는 남자라면 특이하게 봤는데 요즘에는 피부 건강을 생각해서 금연하는 남성들도 있다"며 "조직 내에서 동안(童顔)이 더 경쟁력 있는 것처럼 평가돼 피부에 신경 쓰는 친구들이 꽤 있다"고 말했다.
연령대도 다양하다. 대구 수성구 상동에 있는 S 피부관리숍의 경우 저녁 시간에는 퇴근한 30, 40대 직장인 남성들의 발길이 잦지만 낮 시간에는 60대 후반의 어르신들도 적지않다. 1시간 30분가량 이어지는 기본 코스의 가격이 7만, 8만원 선이지만 꾸준히 오는 손님들이 차츰 늘고 있다. 여성들만큼이나 피부 관리에 대한 관심도 많아 관련 제품을 구입하거나 궁금한 점들을 일일이 물어보기도 한다는 게 직원들의 귀띔.
전수경(33) 대표는 "자기 관리하는 게 더 이상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남성 고객이 지난해보다 두 배가량 늘었다"며 "남성들은 화장을 하지 않는 만큼 한 번 다녀갈 때마다 효과가 크다고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피부관리숍은 크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NICE신용평가정보㈜에서 제공하는 상권분석 서비스에 따르면, 카드 결제 기준으로 조사한 결과 피부'비만관리 업종은 전국에 8천196곳이 운영 중이다. 시장규모는 월 2천4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조사에서는 대구의 경우 367곳이 있었으며, 월평균 매출액은 2천만원 정도로 파악됐다. 대구는 업소 수에서는 전국 6위였지만 1회 결제금액은 16만원을 기록, 4위에 올랐다. 특히 연령대별 이용 비중은 전국 평균과 비슷했지만 50대는 전국 20.7%보다 높은 23.5%를 기록해 눈길을 끌었다. 1회 결제금액이 비싸 경제력을 갖춘 이 연령대의 이용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취업이 잘되는데다 창업까지 가능하다는 이유로 지역 각 대학의 관련 학과도 상한가를 치고 있다. 대구한의대 대학원에서 한방피부미용을 전공하고 있는 이아름(25) 씨는 "다른 대학을 다니다 전망이 밝아 보여 3학년 때 편입했다"며 "국가자격증인 피부미용사를 따서 창업하면 자신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데다 수입 역시 괜찮다"고 소개했다.
◆연평균 10% 성장하는 신성장동력산업
중장년층 사이에서 '꽃중년' '미중년'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어려보이고 싶은 욕구가 확대되면서 안티에이징 시장은 거대 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올해 내놓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부상하는 안티에이징'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안티에이징 시장은 약 11조9천억원 규모. 시장의 성장 속도도 빨라 연평균 10.1%씩 커지고 있다. 시장의 약 75%를 화장품 소비재가 차지하며 있으며 의료 부문이 18%, 서비스 부문이 7%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00세 시대'를 맞아 단순히 오래 사는 것보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한 채 사는 것이 전 국민의 화두가 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현상은 전반적인 국가 경제 수준이 향상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화장품, 이'미용 서비스 등 자신을 꾸미는 데 투자하는 비용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 성장률과 비슷하게 성장한 뒤 불황이 찾아와도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 특징을 보인다는 설명이다.
안정적 자산을 바탕으로 건강과 젊음에 적극 투자하려는 '액티브 시니어층'이 부상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적극적으로 외모를 가꾸는 중년을 의미하는 'NOMU'(No More Uncle)족, 'RUBY'(Refresh, Uncommon, Beautiful, Young)족이나 패션과 미용에 관심을 갖고 철저한 자기 관리를 하는 남자들을 일컫는 그루밍(Grooming)족 등의 신조어도 등장했다. 중국'러시아 등 신흥국의 관련 산업 성장세가 가파른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측은 "우리나라의 경우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기 시작하면서 안티에이징을 위한 투자는 더 증대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가는 세월을 막아주겠다'는 기업들의 마케팅 역시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안티에이징 시장을 주도하는 화장품업체들은 노화 치료 제품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가전업체들은 소비자들이 집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안티에이징 홈케어 상품을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미세주름을 잡는 레이저 상품, 초음파 미용기기, 피부 노화를 일으키는 공해물질이나 활성산소를 없애주는 가습기 등이 출시됐다. 또 의류회사들은 자외선 차단 기능을 강화한 외출용 의류를 내놓고 있고, 식품회사는 먹으면 피부 노화가 예방된다는 '뷰티 푸드'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최근에는 콜라겐이나 오메가3, 비타민, 폴리페놀 등 항산화 성분이 함유된 원재료를 사용했다는 '동안 음료'까지 등장, 눈길을 모으고 있다.
대구시내 한 대형 마트의 화장품업체 관계자는 "안티에이징 화장품의 가격대가 일반 제품보다 다소 높지만 꾸준히 팔려나간다"며 "한 살이라도 젊게 보이고 싶은 것은 나이를 들어가며 누구나 갖는 바람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피부 관리 어플리케이션 역시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기미'주름 등을 통해 피부 나이를 체크해주는 앱이 있는가 하면 피부가 좋아지는 음식을 소개하는 앱도 있다. 또 날씨 정보와 이에 따른 피부 관리법, 추천 제품을 소개해주는 앱도 선보였고, UV 타이머로 자외선 차단제 덧바르는 시간을 알람 기능으로 알려주는 앱도 등장해 눈길을 끈다.
◆'100세 청춘' 규칙적 우농 등 기본부터 철저히
숫자로만 보면 우리나라 남성은 세계에서 가장 피부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가 남성용 기초화장품 시장을 분석한 결과 한국은 인구가 훨씬 많은 중국'미국'일본 등을 제치고 세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전 세계 남성 화장품 매출액 가운데 21%를 차지, 한국 남성들이 없으면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신제품 개발 아이디어나 시장 테스트가 불가능할 정도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이와 관련, 영남이공대학교 스킨케어학과 당수민(42'여) 교수는 "동양인들은 서양인보다 유전적으로 노화 현상이 늦게 나타나지만 대중매체의 영향으로 국내 남성들의 관심이 급속도로 높아졌다"며 "가족을 위해 몸바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해온 한국 중년 남성들의 '작은 반란'"이라고 지적했다.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도 남성용 안티에이징의 성장을 이끌었다는 평가다. 남성의 피부는 첫인상을 결정하고, 안색이 현재 컨디션의 바로미터이기 때문에 깨끗하고 맑은 피부가 사회생활에서 유리하게 작용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화장품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안티에이징 제품를 주로 구입하는 남성들은 학원 강사'자동차 딜러 등 평상시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하는 직업군이라고 한다.
의료계는 환자 치료를 넘어 미용관리 영역에서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보톡스나 필러 시술 등 피부 노화를 막는 기술도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필러는 '채우는 물질'이란 뜻으로 팔자 주름이나 이마 주름 등 이미 생긴 고정 주름을 개선하는데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허벅지 등 자신의 몸에서 지방을 채취해 꺼진 볼이나 이마에 지방을 채워 넣는 '자가 지방 이식' 수술도 성황이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현대 과학도 노화를 막을 수는 없다. '100세 청춘'를 위해서는 오히려 기본적인 수칙을 지키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영남이공대학 당수민 교수는 "규칙적인 운동, 마인드 컨트롤, 식이요법, 철저한 세안 등이 피부 관리의 핵심"이라며 "여름철에는 너무 차갑거나 뜨거운 곳을 피하고, 물을 많이 마시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글'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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