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옛날 돼지

신문을 보니 대구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정서 함양을 위해 염소, 송아지 등 친근한 동물을 키운다고 한다. 문득 우리들의 초등학교 시절이 생각났다. 그 무렵의 시골학교는 일반적으로 실습지도 보유하고 여러 가축을 키우고 있었다. 아직은 농경사회였기 때문이다. 병아리, 토끼 같은 작은 동물은 저학년이 맡았지만 돼지는 상급생들이 담당했다. 먹이를 해 대는 일은 만만치가 않았다. 남학생 둘이 한 조가 되어 사냥을 다녔다. 돼지가 좋아하는 개구리나 뱀은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엄청나게 큰 수컷 돼지는 인근 마을에서 발정 난 암퇘지가 리어카나 달구지를 타고 찾아오면 사랑을 나누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일반 가정집에서는 씨돼지를 잘 키우지 않았다. 암퇘지는 새끼를 얻을 목적이니까 늙도록 키우는 수가 있었지만, 수퇘지는 일정한 무게가 되면 빨리 내다 팔아야만 돈이 되었던 것이다. 대개의 수퇘지가 '150근'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하직했던 것을 보면 그 돼지는 천수를 누리면서 '신이 내린 보직'까지 즐긴 셈이다.

그렇지만 과연 그 돼지가 행복하기만 했을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소리가 '마누라 샤워하는 소리'라는 우스개가 있는 걸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내가 샤워를 하면 코를 골면서 자는 척하거나, 집 앞 가게에 맥주를 마시러 도망을 가본 적이 더러 있으리라. 한때 좋아하던 일도 시들해지면 그렇게 싫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하물며 돼지는 그 짓을 직업(?)적으로 했으니.

운전을 하다가 등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번호가 매겨진 채 도살장으로 실려가는 돼지를 보노라면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하나같이 꼬리는 잘려 있다. 그뿐만 아니다. 수컷은 끔찍하게도 거세까지 당한다. 생명체로서 존엄성은 박탈당한 지 오래다. 인공수정으로 태어나 오직 사료를 많이 먹고 살을 열심히 찌워야만 한다. 고기를 만드는 기계로 전락한 것이다. 요즘의 돼지는 키우는 게 아니라 철저하게 인간의 필요에 의해 제품처럼 만들어지고 소비될 뿐이다.

돼지는 잡식성으로 무엇이든 주는 대로 잘 먹었다. 썩은 채소나 과일 등 상한 음식도 곧잘 먹어치웠다. 당연 분뇨도 많이 배설했다. 화학비료가 넉넉하지 않던 시절, 훌륭한 거름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배가 고파 우리에 앞발을 올리고 꿀꿀거리면 주인은 풀뿌리라도 뽑아 던져 주었다. 비록 배는 고팠지만 인간과 한집에서 교감하면서 살던 그 시절의 돼지가 훨씬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설거지 구정물 등 온갖 음식 쓰레기를 말끔하게 처리하다가 머리에서 발끝까지 아낌없이 주고 떠나던 옛날의 돼지가 그립다.

장삼철/삼건물류 대표 jsc103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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