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세나'가 진화 중이다. 재정지원을 해주고 콘서트 표를 사주는 수준에서 기업들이 직접 문화예술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기획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해도 그만, 하지 않아도 그만이 아니다. 일부 기업의 경우 '제3의 경영'으로 불릴 정도로 기업의 핵심 역할로 자리 잡았다. 지원방식도 단순 후원 외에 인재를 육성하거나 기업 임직원들이 직접 문화예술 활동에 참여하는 등 다양하다. 메세나(mecenat)는 문화예술'스포츠 등에 대한 원조 및 사회적'인도적 입장에서 공익사업 등에 지원하는 기업들의 지원 활동을 총칭하는 용어이다. 베르길리우스, 호라티우스 등 문화예술가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은 로마제국의 정치가 마에케나스(Maecenas)에서 유래됐다.
◆메세나가 잇따르는 대구경북
지난해 5월 6일 계명아트센터에서는 국내외 최정상급 오페라가수 8인이 출연하는 갈라 콘서트(주연급이 등장해 작품의 주요 장면을 부분적으로 공연)가 화려하게 펼쳐졌다. 세계정상급 이스라엘 출신 오페라 가수와 세계 유수의 무대에서 인정받은 국내 남성 성악가들이 나섰다. 이들은 모짜르트의 '마술피리' 중 난이도가 높기로 정평이 나있는 '밤의 여왕' 아리아 2번부터 비제의 '카르멘' 중 '투우사의 노래'와 '하바네라' 등 우리 귀에 익숙한 명곡들을 비롯하여 한국과 이스라엘의 전통민요까지 다양한 곡들을 선보였다. 대구 오페라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것으로 평가받은 이 공연은 지역의 한 업체(대구텍)가 전액 후원했기에 가능했다.
한 달 뒤. 대구 중구 북성로 입구에 두꺼비가 떼로 출몰했다. 황금색, 파란색의 두꺼비들이 도로 입구에 세워진 전봇대를 열심히 오르고 있는 모습은 1년 사이 북성로를 상징하는 마스코트가 됐다. 두꺼비 주인은 이곳에서 공구를 생산'유통하는 기업인 '크레텍'. 북성로 일대를 이야기가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 지역문화 발전과 경관 향상을 도모하려는 중구청의 문화골목 조성프로젝트에 적극 동참한 것. 이 회사 관계자는 "북성로가 대구 근대산업을 일으킨 원동력이자 견인차 역할을 한 곳이고 회사의 발생과 성장이 이뤄진 곳인 만큼 부를 상징하는 두꺼비 조형물을 설치했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연간 5억원을 들여 '월간 공구사랑'을 제작해 관련 업체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업계 소식뿐만 아니라 공구업계 종사자들이 즐길 만한 라이프스타일과 문화계 소식, 문화'예술'역사 등을 다양하게 조명하고 있다.
그동안 대구경북은 메세나 운동이 미약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지원 규모나 활동 분야에서 다른 시'도에 비해 열악했다. 그러나 최근 문화예술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올 들어 대구은행'삼익THK 등 지역 대표 기업들이 본격적인 메세나 운동에 나섰다. 이들은 대구문화재단 등과 문화예술 동반성장을 위해 업무제휴를 맺고 메세나 운동을 올해의 핵심사업으로 채택했다. 공동주택 전문관리회사인 동우씨엠도 최근 본사 3층 비즈니스홀에서 문화예술전용극장 CT와 '2013 문화 1촌 기업 메세나 협약식'을 가졌다.
◆찾아가는 메세나
돈으로 해결하는 메세나만 있는 게 아니다. 일부 기업들은 '찾아가는 메세나'를 통해 문화예술 확산에 앞장서는 한편 소외된 이웃에게도 따뜻한 문화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합창단이나 예술단을 만들어 활동 중인 곳도 많다.
대구은행 임직원들은 지난해 10월 대구시 중구 근대골목길을 함께 걸으며 문화의 향기를 느끼는 골목길투어 '근대路 갑시Day'를 열었다. 임직원들은 중구 동산동 선교사주택 뜰에서 출발해 3'1만세운동길과 계산성당을 거쳐 진골목까지 이어지는 대구 근대문화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대구 문화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과시했다.
대구백화점은 2004년 당시 지역의 유일한 기업합창단인 대백여성합창단을 창단했다. 공개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단원 30여 명으로 출발한 대백여성합창단은 전업주부 또는 직장인으로 구성된 아마추어 그룹이다. 최근 자체공연보다는 각종 봉사활동과 문화행사 등에 활발히 나서고 있다.
포스코 패밀리 직원들도 포스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결성해 수시로 공연활동에 나섰다. 이들은 '나눔의 토요일'과 같은 전 임직원이 함께하는 봉사와 나눔의 기업문화를 펼친다. 특히 한국YWCA연합회와 손잡고 폭력 없는 학교 만들기를 위한 '친친 와이파이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교내에서 반폭력 주간을 정하고 체험 부스를 통해 반폭력 문화를 만드는 청소년 문화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다.
사야문화재단 등을 통해 메세나 활동에 앞장서고 있는 태창철강은 매년 임직원들이 직접 공연장을 찾는다. 최근 3년간 '뮤지컬 시카고' '오페라 나비부인' '대구시향연주회' '뮤지컬 미스사이공' '국제재즈페스티벌' '국제 뮤지컬축제' '국제오페라축제' 등의 공연을 단체로 관람했다. 이 회사 한상철 이사는 "메세나 운동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기업문화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조직원들이 문화를 즐기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직원들과 함께 공연장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배우인 최우정 씨는 "최근 기업들의 공연 요청이 잇따르는가 하면 홀몸 어르신 등과 함께 단체공연 참가를 희망하는 기업들도 많다"고 전했다.
◆제3의 경영
봉사나 희생만을 위한 게 아니다. 메세나가 관리'마케팅에 이어 '제3의 경영'이 되고 있다. 사회 공헌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 인식되면서 사회 공헌의 패러다임도 바뀌고 있는 셈. 메세나가 단순 기부나 봉사 활동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이른바 '사회적 혁신'(social innovation)으로 생각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메세나 전담 부서까지 두고 있다. 메세나를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서다. 금복주 메세나의 중심에는 '금복문화재단'이 있다. 금복문화재단은 금복주 메세나의 중추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김동구 이사장을 포함한 7명의 이사진에는 문화예술 전문가들이 포함돼 있으며 이사진을 보좌해 실무를 담당하는 재단 사무국이 운영되고 있다.
대구은행은 사회공헌부를 두고 문화사업을 포함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벌이고 있다. 특히 DGB사회공헌재단과 함께 탄탄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특화된 메세나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화성산업은 2011년 사회적 기업인 '화성그린케어'를 설립, 취약계층에 대한 일자리 제공 및 소외 이웃 지원 등 찾아가는 메세나를 실천하고 있다. 대구백화점도 최근 조직 개편을 통해 문화사업팀을 분리함으로써 메세나 관련 문화사업을 강화했다.
귀뚜라미 보일러 김영상 홍보담당은 "과거 기업들의 사회 공헌 활동이 기부 위주였다면 최근에는 재능 기부, 메세나로 옮겨가는 추세다"고 설명했다. 메세나 운동은 기업들에게도 이익이다. 대구은행 이주형 홍보팀장은 "기업이 문화활동을 후원하는 등 문화경영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감으로써 내부적으로는 창조적인 문화가 형성되고, 예술단체와 예술인에게는 안정적인 창작활동을 보장하게 된다. 그 결과, 지역경제와 문화가 상호발전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구은행은 앞으로 지역의 문화적 소외계층에게도 골고루 문화적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지역문화예술에 대한 후원 비중을 지속적으로 늘릴 방침이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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