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이 하루 동안 마시는 물의 양이 2ℓ 정도라고 한다. 사람이 80년을 산다고 봤을 때 평생 5만8천400ℓ 정도의 물을 소비하는데 수돗물로 따져보면 2만원쯤으로 평생 갈증을 해결할 수 있다. 땡볕 내리쬐는 운동장에서 신나게 축구 한판 하고 수돗가로 달려가 형편없는 수압을 엄마 젖 빨 때의 솜씨로 마셔본 이들은 수돗물이 얼마나 달콤한지를 알 것이다. 하지만 요즘 수돗물로 갈증을 해결하는 사람을 찾기는 어렵다. 언제부턴가 갈증을 해결하는 몫은 생수 차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생수가 처음 한국에 시판된 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 때였다고 한다. 외국 선수들을 대상으로 생수 판매를 허가했는데 올림픽이 끝나고 바로 폐지되었다. 많은 돈을 들여 생수 개발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황당할 수밖에 없었는데 오랜 법적 공방을 거쳐 1995년 '먹는 물 관리법'이 제정되고 생수를 공식 판매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생수(공식적인 명칭은 '먹는 샘물'이다)를 판매하려고 하니 이것도 쉽지 않았다. 수도꼭지만 틀면 나오는 물을 판다는 게 정서상 맞지 않았는데 특히 봉이 김선달이라는 불세출의 물장수를 조상으로 두고 있는 탓에 더욱 그랬다. 봉이 김선달의 후예들이 내놓은 방안은 생수에 새로운 이미지를 입히는 것이었다. 대체로 서구의 경우도 비슷한데 생수를 건강한 이미지로 포장하는 일이었다.
한국에서도 인기 있는 프랑스 생수는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뭔가 특별한 효능이 있는 듯 불티나게 팔리며 온갖 그럴싸한 이름을 붙인 생수들이 자신만의 효험을 내세워 판매되고 있다. 사실 생수에 듬뿍 함유되어 있다는 미네랄 등이 건강과 어떤 관련이 있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 또 환경론자들은 생수 한 병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같은 양의 수돗물을 생산할 때보다 무려 600배에 달하는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고 한다. 딱히 건강에 좋다는 근거도 없고 환경에도 좋지 않은, 거기다 수돗물보다 비싸기까지 한 생수를 선택하는 것은 수돗물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수돗물이 깨끗하고 좋은 물이라고 아무리 홍보를 해도 사람들은 신뢰하지 않는다. 정 믿기 힘들면 끓여 먹으면 된다고 하지만 그런 수고를 하느니 생수를 마시는 편을 선택할 것이다.
여기에 현재의 물은 브랜드와 디자인 개념이 결합된 패션의 이미지로 등극했다. 유명 연예인이 TV에서 들고 나와 마신 생수는 다음 날 백화점 식품 매장의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한다. 1ℓ에 만원이 넘는 생수지만 없어서 못 팔정도니 이건 갈증을 해소하는 것만은 분명 아닐 것이다.
수돗물을 그냥 마시기도 그렇고 생수를 마시자니 지구가 싫어할 테고 보리차를 끓여 마시자니 귀찮고 여름은 다가왔는데 참 목 마르다.
권오성<대중음악평론가 museero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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