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청년들이 진로에 대해 조언을 구할 때 자주 되묻는다. "당신의 가치관은 무엇입니까?" 놀랍게도 대개의 사람들은 바로 답을 하지 못하거나 머뭇거린다. '가치관'이라는 말은 초등학교 때부터 '올바른 가치관의 확립' '바람직한 가치관의 형성' 같은 구호 아래 자주 들어왔고, 또 일상적으로 자주 쓰는 말 중 하나다. 그런데도 막상 자신의 가치관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그 답이 바로 나오지 않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다. (박경철의 '자기혁명' 중에서)
얼마 전 교육청에서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진로 캠프를 실시했다. 오후 늦게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이 사무실을 찾았다. 2월에 있었던 사제동행 토론 어울마당에 참가했던 학생이었다. 나를 만나 꼭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 행사를 통해 삶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알고 보니 2월 교육 느낌표에 인용했던 어울마당 소감문을 쓴 학생이었다. 학생은 법조인이 되어 법이 가진 정의를 실현하고 싶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판사나 검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지만 어울마당을 거치면서 자신의 미래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이기기 위해서 어울마당에 참가했는데 오히려 이긴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나눔과 배려의 과정을 거치면서 어울림의 행복을 알았다고도 했다.
학생이 돌아간 후, 나는 진심으로 학생이 자신의 꿈을 이루게 되기를 기원했다. 물론 주변의 상황이 아이의 꿈을 방해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학생의 미래를 낙관했다. 왜냐하면 학생은 이미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성적이나 경제적 문제들이 학생의 미래를 방해하더라도 학생은 다양한 직업 중에서 법이 가진 정의를 실천하는 일을 선택해 자신의 꿈을 펼칠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가치관(價値觀)은 인간이 자기를 포함한 세계나 그 속의 어떤 대상에 대하여 가지는 평가의 근본적 태도나 관점을 말한다. 나아가 가치관은 옳은 것, 바람직한 것, 해야 할 것 또는 하지 말아야 할 것 등에 대한 판단 기준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결국 가치관을 정립한다는 것은 내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또는 세상과 나 사이의 접점을 찾는 것이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서나 '세상과 나 사이의 접점'을 찾기 위해서는 '나'도 알아야 하고 '세상'도 알아야 한다. 나아가 '세상'과 '나'의 관계도 알아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지금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가? 앞으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런 질문은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서 반드시 먼저 실천해야 할 질문이다. 현재 교육 현장에서 이런 풍경을 목도하기는 쉽지 않다. 아이들의 하루는 말 그대로 전쟁이다. 오직 성적과의 전쟁이다. 그것만 이루어지면 세상의 모든 풍경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세상은 끊임없이 주입한다. 하지만 '나'의 가치관을 정립하지 않고 세상과 진정으로 만나기가 쉽지 않다. '나'를 먼저 이해해야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긴다.
세상의 풍경은 다양하다. 세상이 만들어가는 삶의 풍경도 제각각이다. 내가 알아가는 세상만큼이나 새로운 세상들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당연히 세상 모두를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세상의 변화에는 나름대로 질서가 있다. 그것을 '시대정신'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시대정신을 읽지 못할 때 '나'는 영원히 시대와 불통한다. 불통하면 내가 아프거나 시대가 아프다. 내가 아프지 않기 위해서, 나아가 '나'로 인해 시대가 아프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시대와의 접점을 찾아야 한다. 나의 미래는 시대정신을 읽어가는 데 있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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