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불안한 대구의 밤

날씨가 무더워지는 요즘에는 '밤 마실' 나가기에 '딱'이다. 신천 둔치나 공원에 자리를 깔고 가족이나 친구들과 끼리끼리 모여 정답게 얘기를 나누다 보면 더위가 오히려 반가울 정도다. 출출해지면 가져온 수박도 먹고 '치익' 캔 맥주 따는 소리에 무더위까지 씻겨나간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밤 마실 다니기가 겁이 난다. 성폭력 등 5대 범죄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경찰청에 따르면 대구에서 매일 성폭력 사건이 2건 정도 발생한다. 특히 대구경북에서 15세 이하 성폭력 사건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대구에서 발생한 1천91건의 성폭력 사건 중 피해자가 15세 미만인 경우가 159건(전체의 14.5%), 경북지역 또한 826건 중 139건(16.8%)에 달했다. 2011년과 비교하면 대구는 121건에서 159건으로 31% 증가했고, 경북은 128건에서 139건으로 8.5% 증가한 수치다. 이들 사건은 주로 야간시간대에 일어났다.

시민들이 느끼는 불안감도 전국 최고 수준이다. 최근 대구여성가족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대구 시민들이 느끼는 가정과 안전한 삶에 대한 만족도가 전국 최하위 수준이라고 한다. 사회 안전도 인식에서 대구는 6.1%로 전국 평균 11.3%의 절반 수준이었으며 남성 7.9%, 여성 4.6%로 전국 최하위 수준으로 나타났다. 대구가 시민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모든 범죄가 그렇지만 특히 강도와 성폭력, 그리고 살인은 반인륜적 흉악범죄이다.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고 행복을 짓밟는 원흉들이다. 이러다가 범죄도시로 변하는 게 아닌지 불안하다.

그런데 이웃 부산의 밤길은 다른 모양이다. 부산지역 일부 지자체와 주민들이 범죄에 대한 불안감 해소를 위해 범죄 취약지역의 환경을 개선하는 등 도시안전을 직접 챙기고 있어서다. '김길태 사건'이 발생했던 부산 사상구 일대 주민들은 공'폐가를 정리하는 등 우범지역을 없앴다. 해운대구청도 범죄 취약지구에 시민들이 쉽게 범죄신고를 할 수 있도록 '범죄 식별 번호판'을 부착했다. 범죄 예방을 위해 셉테드(CPTED: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를 적용한 사례다. 셉테드는 주어진 환경에 적절한 디자인으로 범죄 발생 및 범죄 두려움을 감소시키고자 하는 것. 어두운 골목길을 밝게 하고 폐쇄된 엘리베이터를 투명하게 만들고 지하주차장의 조명을 높이는 식이다.

'디자인으로 범죄를 막는다.' 얼핏 아름답지만 다소 공허한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 멋진 단어들이 마법을 부리고 있다. 국내에서 처음 셉테드 시범지역으로 지정된 경기도 부천시 고강동과 심곡동 주택밀집지역은 범죄 발생률이 이전보다 20% 줄었다. 외국도 마찬가지. 뉴욕의 대표적 우범지역인 연립주택단지 클래슨포인트가든은 어두운 보행로와 폐쇄적 공원 등을 정비한 후 인구 1천 명당 강력범죄가 매달 6.91건에서 3.61건으로 급감했다. 미국 내 셉테드를 적용한 건축물의 강도사건 발생률은 적용 전보다 50% 이상 감소한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아쉽게도 대구는 이 분야에서 불모지다. 지난달 분양을 시작한 한 아파트만 셉테드 인증을 받았을 뿐이다. 최근 경찰에서는 성폭력'학교폭력'가정폭력'불량식품 등 4대 사회악 근절을 위한 TF팀을 구성하여 대응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경찰만으로 4대 사회악을 근절하고 강'절도 등 각종 범죄를 예방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이제 대구도 셉테드에 눈을 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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