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률'이 대학을 옥죄고 있다. 정부가 취업률에 따라 대학을 평가하고 지원금을 차등 지급하면서 학문 연구라는 본연의 대학 역할이 사라질 지경이다. 대학 당국은 취업률을 올리기 위해 편법마저 동원, 교수들을 닦달하고, 교수들은 연구보다 제자 취업에 더 골몰하고 있다. 제자 취업률에 따라 교수의 연봉까지 결정된다. 학생들은 수시로 학교에서 '취업 체크' 전화를 받고, 자신의 꿈과 상관없이 원치않는 일자리에 취업을 강요당한다.
◆제자 취업에 목매는 교수들
지역의 한 종합대학교 사회과학대 A교수. 제자 면담을 통해 그는 1여 년 전 전공 수업과는 별도로 토익 공부 모임을 만들었다. 1주일에 2, 3차례 모여 10여 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토익 문법과 독해 강의를 하고, 집중적으로 공부를 시킨다. 자비로 술과 밥까지 사 먹이면서 학생들을 다독인다. 토익 점수가 오르지 않으면 심한 야단까지 친다. 방학이 되면 학생들을 서울로 올려 보낸다. 서울 영어학원에서 토익을 공부하라는 것. A교수는 "아무래도 서울에서 한두 달 공부하면 자극을 받아서 점수가 꽤 오른다"고 했다. 이 모든 것이 취업을 위한 것이다. 학교 당국에서 취업률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다 보니 교수 입장에서도 자연스레 학생들의 취업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사회과학을 전공해 취업이 쉽지 않은 학생들에게 토익 점수는 필수 요건이다.
A교수는 "1학년의 80%가 공무원을 원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생각에 강압적으로라도 포기시킨다. 2학년이 되면 공무원을 하겠다는 학생이 절반으로 줄어들고 4학년이 되면 10% 미만만이 공무원을 하겠다고 한다"며 "취업률이 지상 최대 목표가 된 상황에서 학생들을 취업에 조금이라도 유리하도록 공부시킬 수밖에 없다"고 했다.
대학 당국은 학생 취업률을 올리기 위해 교수들은 몰아붙인다. 학생 충원율과 취업률을 바탕으로 교수의 연봉까지 결정한다. 실제 지역의 모 대학은 2007년부터 입학생 충원율과 취업률을 바탕으로 교수 및 학과 평가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성과금을 지급한다. 1년에 교수마다 최대 2천만원까지 차이가 난다. 이 대학의 한 교수는 "교수들이 학문 연구와 논문을 쓰는 전통적인 역할에서 벗어난 지는 이미 오래됐다"고 했다.
또 다른 종합대학도 사정은 마찬가지. 교수를 평가하는 주요 잣대로 논문과 같은 연구 실적, 강의, 대외활동 등 봉사, 크게 이 세 가지로 평가했으나 이제는 '취업 및 산학협력'이라는 평가 기준이 추가로 들어갔다. 이를 통해 교수가 속한 해당 학과 졸업생 취업률과 연관된 것으로 '제자 취업'이 교수 연봉과 직결되는 체계다. 이 대학 관계자는 "교수가 노력한 만큼 학과 취업률이 올라가는 게 눈에 보이기 때문에 학생 취업과 '보상'을 연결시킨 것"이라며 "요즘은 교수 하기 참 힘든 세상이다. 나도 틈만 나면 아는 사람들한테 전화를 걸어 학생들 '취업 청탁'을 하곤 한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대학의 한 교수는 "부산의 모 대학은 학생 한 명이 취업하면 담당 교수가 70만원씩 인센티브를 받기도 한다. 이게 말이 되냐"고 비판했다.
◆취업 강요당하는 학생들
이처럼 대학이 취업률에 목을 매면서 자신의 꿈이나 진로와 상관없는 '불필요한 취업'을 권유받는 학생들도 있다. 지역의 모 대학 영어 관련 학과에 다니는 4학년 C(23'여) 씨는 올해 3월 같은 학과 졸업생 선배에게 영어학원 아르바이트 자리를 추천받았다. 취업 준비를 하며 용돈이 필요했던 C씨는 아르바이트 경력을 잔뜩 쓴 이력서를 학원에 제출했다. 하지만 며칠 뒤 학원 측에서 "이력서 양식에 맞춰 다시 써라"며 연락이 왔다. 면접을 보면서 C씨는 '알바'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챘다. 이 자리를 소개해준 C씨의 선배는 졸업 후에도 교수들과 관계를 유지하며 같은 후배 여러 명을 학원에 취업하게 하는 데 다리를 놓은 사람이었다. "학원에서 '우리는 1, 2년하고 그만두면 곤란하다. 평생직장이라 생각하고 일하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알바로 알고 일을 시작할 뻔했어요. 한번 일을 시작하면 나중에 발을 못 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시간표가 안 맞아서'라고 변명하며 어렵게 거절했습니다."
경영학을 복수 전공해 무역회사에서 일하기를 원하는 C씨는 "만약 그때 취업했으면 학과 취업률은 올릴 수 있었겠지만 그건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며 "빨리 취업만 강요하는 현 분위기에서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설계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기획취재팀=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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