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대웅(가명'52) 씨는 "몸은 병원에 있지만, 이런저런 걱정에 병원에만 있는 나 자신이 답답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황 씨는 자신의 몸 상태만 돌봐도 모자랄 판에 홀로 남아있을 둘째 아들 걱정, 남아있는 빚 걱정, 1년 전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 아내 걱정까지 여러 가지 걱정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눈도 침침하고 말을 할 때 발음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것도 걱정이다.
◆미루고 미루다 키운 병
황 씨는 5개월 전부터 직장암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변비가 시작되더니 갑자기 대변에 피가 묻어나왔다. 황 씨는 불안한 예감이 들기는 했지만, 병원에 갈 수 없었다. 병원비 때문이었다.
"대장 관련 검사를 받으려면 돈이 많이 들 텐데 한 달 80만원 받고 사는 기초생활수급대상자가 검사 한 번 받고 나면 한 달 먹고살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혈변 증상은 멈추지 않았다. 이를 보다 못한 한 복지관의 사회복지사가 황 씨를 데리고 대구의 한 종합병원으로 데려가 검사를 받게 했다. 결과는 직장암. 황 씨는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다. 그래서 다시 다른 종합병원을 찾아가 검사를 받았다. 하지만, 결과는 그대로였다.
"너무 놀랐습니다. 무엇보다 올해 중학교에 들어간 둘째 아들이 가장 걱정되더군요. 적어도 고등학교 졸업하는 걸 볼 때까지는 살아있어야 하는데…."
그래도 황 씨는 마음을 다잡고 치료를 받기로 했다. 황 씨는 "암 치료라고 해봤자 수술해서 암 덩어리 떼어내고 잠깐 항암주사 맞고 얼마 안 있으면 퇴원할 줄 알았는데 수술뿐만 아니라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까지 다 받고 결과를 보기까지 몇 달이 걸린다고 하니 답답할 노릇"이라고 했다.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인생
경북 울진이 고향인 황 씨는 4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집안이 가난했던 황 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대구에 와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맨 처음에는 건설'설비 일을 했다. 그리고 공장에서 용접 일도 하고, 몇 년 후에는 다시 보일러 설비 쪽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초등학교 졸업 후 집안에서 공부시킬 능력이 안되니까 부모님이 대구에 있는 형님들 따라 절 보낸 거죠. 배운 게 없으니 당연히 몸으로 때우는 일 밖에 할 수 없었어요."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던 중 아내를 만났다. 한창 새시 설비 일을 하던 시기에 아는 사람으로부터 소개받았다. 심성이 착해 보여 평생의 반려자로 맞았지만, 가정에 소홀한 아내 때문에 힘든 결혼생활을 해야 했다. 황 씨는 자식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는 적어도 서류 상만이라도 온전한 가정을 이루고 싶어 이혼하지 않고 꾹꾹 참아왔다.
황 씨가 꾸준히 해 오던 설비 사업도 외환위기(IMF) 때 일감이 끊기는 등 불황의 직격탄을 맞고 말았다. 결국, 사업을 접고 다시 일용직 노동자, 공공근로 등으로 생계를 이어나가야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체력적으로 힘든 일을 하면 전기가 통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는 황 씨에게 '공황장애'가 생겼다고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년 전 아내는 집을 나갔고 돌아오지 않고 있다.
황 씨는 이런 자신의 처지가 "답답하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답답하지요. 아내와 함께 착실하게 가정을 꾸려 내 자식들에게 남들 해주는 만큼 해 주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었는데 그러고 있질 못하는 나 자신이 답답해 죽을 지경입니다."
◆늦둥이 둘째 아들이 유일한 희망
황 씨에게는 두 아들이 있다. 큰아들은 올해 22세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독립해서 친구들과 자취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둘째는 올해 중학교에 입학했다. 둘째는 11살 때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진단을 받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황 씨가 지금 더 신경 쓰는 아들은 둘째 아들이다. 큰아들은 그래도 아르바이트하면서 자기 앞가림을 하고 있어 한 시름을 덜었다. 하지만, 둘째 아들은 아직 미성년자고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한 시기다. 이런 시기에 아무도 없는 집에 홀로 남아있을 둘째 아들을 생각하면 황 씨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황 씨는 "부모가 못 배우고 가난한 탓에 우리 아들들은 다른 집 아들들이 다 가는 학원도 한 번 못 보냈다"면서 "제대로 보살펴 주지 못해 두 아들에게 항상 미안하다"고 말했다.
황 씨는 직장암 치료를 받으면서 둘째 아들이 아무 탈 없이 고등학교까지 졸업하는 것을 보는 게 소원이 됐다. 하지만, 지금의 형편으로는 그 소원을 이루기가 힘들지도 모른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라 수술비와 항암 치료비, 방사선 치료비 등 치료비는 어느 정도 지원을 받는다 하더라도 황 씨 형편에 병원비를 마련하기는 힘들다. 황 씨는 "방사선 치료는 비특진 치료를 받으면 하루에 1만원을 내야 하는데 지금 가진 돈으로는 보름 이상 치료 받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나 황 씨는 어떤 힘든 치료든 견뎌내고 다시 일어설 거라고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졌다.
"병원에 입원할 때부터 각오는 돼 있었어요. 적어도 둘째 녀석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모습을 볼 때까지 살 거라고요. 부모가 못나서 잘해준 것도 없는데 어떻게든 암을 이겨내 다 클 때까지 뒷바라지해 줘야죠. 안 그렇습니까?"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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