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좋은생각 행복편지] 엄마의 여름 '차미'

나에게 엄마의 여름은 늘 노란색입니다. 시원한 푸른색도 아니고 바람 냄새 머금은 초록색도 아니고 봄에나 어울릴 법한 노란색이죠. 왜냐면 말이죠. 엄마가 좋아하시는 과일이 참외이기 때문이에요. 과일 중에서 참외를 제일 좋아하시는 엄마는 콧김이 더 이상 견디기 힘든 날씨가 되면 단 참외 하나로 행복해하셨죠. 여름이면 참외를 달고 사시는 엄마를 보며 아버지는 재미있는 별명 하나 붙여주셨지요. '꺼꿀 참외'. "니 엄마는 꺼꿀 참외여. 거꾸로 있어도 참외를 먹을 겨. 저 봐 얼굴까지 참외를 닮았잖여. 허허." 그럼 엄마는 밉지 않은 시선으로 아버지를 흘겨보시곤 하셨지요.

애정 어린 타박으로 엄마를 놀리시던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엄마는 여전히 참외를 즐기십니다. 참외 알이 톡톡 차오르는 시기가 되면 엄마에게 한 상자씩 보내드리곤 하는데 그때마다 엄마는 "아이구 내가 딸을 안 낳았으면 어쩔 뻔했냐" 하시며 엄마가 하실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저에게 보내곤 하시죠. 다행히 내가 살았던 곳이 참외의 고장인 성주와 벌꿀 참외로 유명한 칠곡이 가까워서 질 좋고 맛난 참외를 저렴하게 보내드릴 수 있었지요.

작년인가요? 참외 한 상자를 사들고 모시로 유명해서 내겐 늘 하얀 느낌의 고향인 충청도 한산으로 갔지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의 끈을 놓지 못하고 여전히 아버지의 전파사 문을 열고 계시는 엄마에게 말이에요. 자주 갈 수 없으니 이것저것 싸들고 간 딸에게 "고마워, 너밖에 없어 나 생각해주는 건" 하시며 딸이 가져간 짐을 선물 보따리 풀듯 푸시더군요. "아버지 제사 지내는 오빠는 참 서운하겠다" 하니 "니 오빠도 잘 허지" 하시며 선물 받은 어린아이처럼 즐거운 표정인 엄마. 그런 엄마를 바라보며 '그래도 참 다행이다. 엄마가 살아계시니까' 이런 생각이 스쳤지요. 나이가 들면 어린아이가 된다고, 가끔 전화해서는 "자식들 있어봤자 소용없다"고, "전화 한 통화도 없고 엄마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투정을 부리시곤 하는데 점점 왜소해져 가는 엄마모습이 왜 그리 서글퍼지는지요.

자꾸 기억력이 흐려지신다는 엄마는 대부분의 물건이며 음식물에 글씨를 써넣으시지요. 그날도 엄마는 아버지 제사상에 올릴 참외를 신문지와 비닐로 꼭꼭 싸서 냉장고 야채박스에 넣어두셨는데 그 위에 쓴 두 글자가 눈에 와 아프게 박히는 거예요. '차미'. 엄마가 그리 좋아하는 과일은 '참외'가 아니라 '차미'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지요. '참외'가 엄마만의 글자인 '차미'로 바뀐 순간, 난 왜 그렇게 애잔한 눈물을 속으로 흘렸을까요? 그 시절, 여느 부모님들이 대부분 그러했잖아요. 집이 어려워서, 학교가 너무 멀어서 배움의 끈을 잡지 못한 부모님 세대. 엄마도 그중 한 분이셨으니 평생 글자에 대한 두려움이 얼마나 크셨을까요.

그 두려움 때문에 면사무소에서도 은행에서도 병원에서도 뭘 쓰라고 하면 덜덜 떠시던 엄마. 그러니 아예 그쪽으로 갈 일을 안 만드시려고 무던히 애쓰셨을 엄마. 사실 어릴 땐 그런 엄마가 싫었거든요. 아버지와 전파사를 하시던 엄마는 옷도 머리도 멋 낼 줄 아셨던 분이셨지요. 하지만 신문도 읽지 못하고 등본 하나 떼는 것조차 못 하시던 엄마가 짜증 나기도 했었거든요. 그게 엄마에겐 얼마나 큰 두려움이었는지 그땐 왜 몰랐을까요? 그런 부분에서 엄마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안정을 되찾으시는 듯했어요. 나이를 먹는다는 건 그런 일에 대해서는 부끄럽지 않아도 된다는 걸, 엄마 스스로가 터득하셨다는 듯이 말이에요. 엄마는 이제 뭔가 쓸 일이 있으면 병원에서는 간호사에게 부탁하고 면사무소에서는 면 직원에게 부탁한다고 하셨지요. 사실 배우지 못한 사람에게 모르는 건 죄가 아니잖아요. 특히 부모님세대에게 말이에요. 그 긴 세월을 꿍꿍 앓고 남모르게 부끄러워하셨을 엄마를 생각하니 '차미'라는 글자가 엄마의 서툰 인생길 같아서 더 아파왔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여러 해를 불안해하며 더 많은 짜증과 투정으로 날 힘들게 했지만, 그런 엄마에게 한달음에 달려가지 못해 전화로 더한 짜증을 부린 딸이기에 더욱 그러했지요.

올해도 엄마에게 맛난 참외 한 상자 보냈어요. 그 참외가 다 떨어지기 전에 또 한 상자 사들고 고향에 가야지요. 그리고 아버지 대신 '꺼꿀 참외'라는 별명을 불러주며 이제는 이가 약해서 단단한 건 수저로 긁어 드시는 엄마의 무릎에 잠시 누워야겠어요. 엄마의 '차미'만큼 달콤한 꿈을 꾸려고요. 그래야 엄마의 여름이 조금은 덜 덥고 덜 외로울 거라는 거 알고 있으니까요. 얼마 전 아버지의 제사상에 오른 참외도 참 달았는데…, 아버지도 '엄마의 차미'를 달게 드셨겠지요?

권미강/경북 작가회의 회원 kang-mom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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