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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나무가 사람을 심는다

예년보다 빨리 더위가 찾아왔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속담도 있지만, 오래가는 무더위도 사람을 지치게 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전국 최고의 폭염을 자랑해온 대구가 언제부턴가 그 이름을 내려놓았다는 사실이다. 나무를 많이 심은 덕분이라는 게 중론이다.

'나무와 도시'라면 대뜸 떠오르는 지명이 있다. '18세기 이래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불렸던 독일의 천 년 고도 카셀이다. 그러나 1943년 10월 22일 단 1시간 30여 분 만에 카셀은 잿더미로 변한다. 영국의 랭캐스터 전투기 444대가 1만9천366개의 유동 소이탄과 40만 개의 막대 소이탄을 투하했기 때문이다. 카셀 하늘을 뒤덮은 80m 높이의 불기둥은 160㎞ 떨어진 프랑크푸르트에서도 보였다고 한다.

그래도 카셀은 1955년 이후 희망의 도시로 부활한다. 화가 아놀트 보데가 기획한 도큐멘타(Documenta) 덕분이었다. 20세기 초의 유명 그룹인 야수파, 표현주의, 큐비즘 등 세계 각국 예술가 148명의 570점 작품이 카셀의 '100일 동안의 박물관'에 걸렸다. 보데는 나치가 '퇴폐'로 낙인찍은 작품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예술 행사를 통해 카셀을 세계화해냈다.

첫 도큐멘타의 대성공 이후 카셀에서는 4, 5년마다 미술 행사가 열렸다. 그중에서도 카셀 도큐멘타를 폭발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이는 요제프 보이스였다. 백남준에게 큰 영향을 끼친 보이스는 7천 개의 육각형 현무암을 박물관 앞에 쏟아놓았다. 그리고는 참나무 한 그루를 심은 다음 그 옆에 현무암 하나를 세웠다. 아무 설명도 없었다. 그것이 그의 1982년도 작품이었다.

이제 카셀 시민들이 현무암을 하나씩 들고 갔다. 시민들은 현무암을 도로변에 놓고 그 옆에 참나무를 심었다. 이윽고 1987년 여덟 번째 도큐멘타 개막일에 7천 그루째 나무가 심어졌다.

마지막 식수의 주인공은 요제프 보이스의 부인 에바 부름바허 보이스였다. 요제프 보이스는 이미 1986년 2월 23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뒤였다. 하지만 '도시를 관리하는 대신 도시를 숲으로 만들자'면서 '우리는 나무를 심고 나무는 우리를 심는다'고 주창했던 요제프 보이스의 작품은 카셀을 세계적 관광지로 탈바꿈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카셀의 경우를 본보기로 삼아 우리 대구도 앞으로는 나무 개체를 늘리는 수준을 뛰어넘어 상징적 이름을 얻을 수 있는 기획 식목을 하면 어떨까? 도시 전역이 동대구로 히말라야시더길 2.8㎞나 상화로 플라타너스 길 1.4㎞ 같으면 대구는 그것만으로도 출중한 관광도시가 될 것이다. 예술과 자연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대구를 꿈꿔본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진정한 '컬러풀(colorful) 대구'를!

정연지(대구미술광장 입주화가) gogoyonj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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