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백 향 맡으며 두릅 순, 키조개, 코펠 밥으로 멋진 한 끼
편백 숲에서는 비가 오지 않거나 심한 는개가 끼지 않는 날은 천막 없이도 캠핑이 가능하다. 모기와 파리가 없기 때문에 간단한 돗자리 하나만 있어도 숲 속에 누워 별들의 잔치에 초대받은 귀빈이 될 수 있다. 새소리만 들리지 않을 뿐 바람 소리와 물소리는 공짜로 즐길 수 있다.
먼 옛날부터 삼나무를 많이 심어 온 일본에서는 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란 방향 물질이 인체에는 좋은 영향을 끼치지만 그것이 새소리를 몰아낸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숲 속의 방향 물질이 벌레를 살지 못하게 하여 그들을 잡아먹고 사는 새들의 서식을 막고 있다는 상관관계를 눈치 챈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그래서 요즘은 측백나무과 수종을 집중적으로 심지 않고 사이사이에 새들이 깃들어 둥지를 틀 수 있는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소나무 숲에 떡갈나무가 공생하는 이른바 혼유림으로 숲을 조성하듯 편백 숲에도 타 수종을 들여오는 것이 이상적이란 설명이다.
편백 숲에 발을 들여 놓기만 하면 상쾌한 기운이 전신으로 퍼져 나간다. 요즘은 그렇게 즐겨 다니던 바닷가 유람을 한켠으로 밀쳐두고 편백 숲 투어에 푹 빠져 버리고 말았다. 이번 코스는 전남 장흥의 편백 숲 우드랜드로 정하고 그 일대 아직 가보지 못한 노력항과 무산 김 생산 현장을 둘러보기로 했다.
장흥군에서 운영하는 우드랜드는 갑자기 밀어닥친 편백 숲 힐링 열풍을 타고 얼마나 인기가 좋은지 숲 속 방을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였다. 나의 도반들은 예정된 스케줄에 크게 구애를 받지 않는 대자유인들이다. 이번 우드랜드행도 예약을 하지 않고 '되면 좋고 안 되면 그만'이란 배짱으로 들이밀고 들어갔다. 우린 운 좋게도 가장 아름답고 아늑한 20평형짜리 '며느리 바위집'(1박 12만원)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윗대 조상 3대의 공덕을 쌓아야 겨우 이뤄질 수 있는 일을 당대에 해낸 것이다.
창문을 활짝 열고 내장재가 온통 편백 판자로 되어 있는 거실에 앉아 있으니 싸아한 숲 향기가 방안 가득 밀고 들어왔다. 점심은 갖고 온 김밥과 장흥시장에서 사온 두릅을 삶아 초고추장에 찍어 먹었더니 그게 바로 진수성찬이었다. 편백숲 향에 봄 향기가 범벅이 되어 우린 신선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어정거리지 않고 바로 산행에 나서기로 했다. 억불산 정상까지는 3.7㎞로 계단 없는 산책로가 높이 518m의 산꼭대기로 연결되어 있다. 휠체어를 탄 장애우들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오를 수 있는 멋진 데크 로드이다. 이 지역 사람들은 이 길을 '말레길'이라 부른다. 말레는 '대청'을 의미한다.
산행 길 주변에는 때마침 분홍색 철쭉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어 2시간 30분이나 걸리는 산행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산정에 올라서니 20만 평의 편백 숲 너머로 천관산, 광춘산, 부용산, 오봉산, 화방산, 수인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었다.
하산길에 '알몸으로 바람의 허리나 한 번 툭 하고 쳐 볼까'하고 '비비에코토피아'란 풍욕장을 찾아갔으나 아무 설명도 없이 문은 닫혀 있었다. 다시 '수랏간'이란 식당으로 내려와 1만원짜리 꿀밤묵을 시켜 동동주 한 잔으로 갈증을 씻어냈더니 '산은 산으로, 물은 물로' 보였다.
장흥에 오면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 토요시장이다. 이곳에서 한우, 키조개, 표고버섯 등 이른바 장흥 삼합을 먹어봐야 비로소 장흥에 들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도반들은 돈 주고 사먹는 음식에 질린 지가 한참 된 터여서 아무도 삼합을 탐내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는 먹다 남은 두릅 순에 시장에서 사온 키조개 2만원어치와 코펠 밥 삼합으로 저녁을 때웠다. 이날따라 술이 뒤로 밀리면서 편백 숲 향과 마주 앉아 오랜만에 살아온 삶을 뒤돌아 볼 수 있었다.
'내게도 편백 향 같은 그런 냄새가 났으면. 친구들이 나를 만날 때마다 상쾌한 기운이 전신으로 퍼져 나갔으면 좋으련만.'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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