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것이건 옛것이건 좋은 미술품을 대하고 받는 감동은 항상 나와 주변을 돌아보게 만든다. 종종 치열한 현대의 담론을 다루는 미술관이 아니라, 박물관 전시실에서 지금 우리가 고민하고 불편해하는 것들을 극복할 수 있는 메시지를 듣기도 하는데, 그것은 줄곧 현대미술관에서만 일해 온 내가 미술관만큼이나 박물관을 자주 찾는 이유가 된다. 하지만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제83호)에서는 번번이 기대했던 감동을 받지 못했기에, 마주할 때마다 마음속에 항상 껄끄러운 물음표로 남아 있었다. 국립고궁박물관에 있던 시절에도, 용산에서도, 아름답고 좋은 줄은 알겠는데…. 솔직히 우리 문화재 중에 단연 최고로 칭송받고 있는 수작임에도 도통 내 가슴엔 그 정도로 와 닿지가 않았다.
'내 안목이 심하게 부족한 건가? 아니면 사람들이 너무 부풀린 건가?'
이 오랜 궁금증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한순간 풀리게 되었다. 강의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들여다본 미술학과 실기실에 바로 그 불상이 놓여 있었다. 주변을 보니 아마 신입생들의 소묘 과제를 위해 놓인 듯했고, 당연히 복제품이었다. 들어가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그러곤 홀로 온몸이 달아오르는 감동에 그 자리를 뜰 수 없었다. '과연….' 수없는 탄복의 되뇜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일주일 후 그걸 가져다 놓으신 교수님께 물었다. "도대체 저건 뭡니까?" 사연인즉 예전 '한국미술오천년전'이 세계를 순회하며 큰 반향을 일으킬 때, 전시품 중 유독 인기가 높던 그 불상을 국가기관의 감독 아래 원본과 동일한 크기로 제작하여 순회전 관련 해외 기관이나 국빈 선물용으로 썼던 '공식 복제품'이라고 대답해 주셨다. 당시 제품들 중 일부가 시중에 유통되기도 하였다는 부언과 더불어 우여곡절 속에 만들어진 제작 과정의 비사까지….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그 오묘하다는 미소도, 섬세한 표현도 아니었다. 그것은 인체의 여러 부분들이 어우러져 만들어 낸 '빈 공간'이었다. 상호와 수인에 맞추어진 초점을 풀고 조용히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오면 시선을 고정할 수 없는, 그것들 사이의 너무나도 우아한 빈 공간을 느낄 수 있다. 감싸듯 포근하고 성스러운…. 눈으로 보지만 감촉으로 느껴지는 공감각의 절정에 이르게 된다. 누군가 이것을 진정으로 재현하기 원한다면, 그는 신체의 물리적 요소뿐만 아니라 빈 공간의 하모니도 함께 볼 줄 아는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왜? 박물관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복제품 앞에선 이렇듯 선명하게 보이는 걸까? 그건 나와 작품이 만나는 방법의 차이에 있었다. 박물관의 진품이 육중한 유리 케이스(심지어 주변의 빛마저도 어지럽게 반사하고 있는) 너머로 나의 시선과 만났다면, 실기실의 복제품은 그것과 나 사이에 어떠한 방해물도 없이 온전히 만난 것이다. 작품이 유리에 갇히면 입체도 평면처럼 보인다. 더 이상 공간의 깊이를 느낄 수 없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바라보는 대상의 매스(mass'덩어리)에만 집착해왔다. 그것은 과학적 합리주의의 부작용이기도 하다. 하지만 엄연히 대상은 그것과 그것을 둘러싼 빈 공간을 같이 포함하는 것이며, 함께 바라볼 때 온전히 대상을 파악할 수 있다. 한 예로 '한 잔의 물'은 넘치도록 가득 찬 상태가 아니라 통상 어느 정도 덜 채워진 모습을 말한다. 언뜻 생각하면, 물을 따른 후 컵을 움직일 때, 넘치지 않게 하기 위함인 것처럼 생각되지만 사실, 그 이유를 조금 더 깊이 고찰해보면, 그것은 '마실 때 입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만큼 비워두는 행위'이며 이를 통해야만 비로소 하나의 '마신다'는 행위가 완성된다는 것을 '몸'이 알고 있기에 무의식은 채우는 양보다 비워 두어야 할 부분에 더 신경을 쓰는 것이다.
빈 공간은 이런 식으로 주변과 관계하는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나는 한 명의 인간이며, 한 여자의 남편이고 한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온전히 내가 각각의 역할을 완성하기 위해 비워 두어야 할 '공간-자세'는 어떤 것일까?' 미술은 항상 이런 식으로 내 삶에 침투해 들어온다.
이두희/우양미술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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