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계향 조선의 큰어머니/정동주 지음/한길사 펴냄
시대에 순응하면서도 다방면에 재능을 보이며 사랑과 나눔으로 자신만의 실천적 길을 걸었던 비범한 조선의 여성, 장계향(1598~1680). 한글로 된 최초의 요리서 '음식디미방'의 저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다. 장계향은 어릴 적부터 시'서'화에 탁월한 재능을 보여 여러 작품들을 남겼으며 출가한 후에도 친정과 시댁 부모님을 정성으로 봉양하고, 어질고 바른 어머니로서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워냈고 셋째 아들 갈암 이현일이 이조판서를 지내면서 정부인의 품계를 받았다.
장계향은 퇴계 이황과 한강 정구, 서애 류성룡의 경(敬) 사상을 이어받은 아버지 경당 장흥효에게서 성리학적 가르침을 사사했다. 장계향은 장흥효의 외동딸이다. 장계향은 인간의 가치와 인간다움의 본질에 대한 성찰을 위해서는 성별과 신분에 따라 물적 소유의 많고 적음, 지식의 높고 낮음에 구애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시기에는 공존의 필요성을 깨닫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을 돌보고 나누는 일에 힘을 쏟았다. 물적 소유의 떳떳함을 선택하고 하층민의 삶에 다가가 소통하고 나눔으로써 진정한 애민(愛民)을 실천한 것이다.
이 책은 이 같은 장계향의 삶을 소설가 정동주가 복원한 것이다. 장계향이 남긴 1차 자료를 바탕으로 그녀의 삶을 재구성한 책이다. 특히 이 책에서는 장계향의 학문과 철학적 사상을 알 수 있는 작품을 자세히 다루었다. 신분의 장벽보다 사람에게 공감하고 시대의 고통을 절감하며 남긴 작품을 통해 여성이 아닌 성리학자로서의 면모를 조명한다. 또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가난한 이들을 구하고 나눔을 실천한 삶에 주목하였다. 사상가, 교육자, 시인, 화가, 사회사업가 등 장계향의 여러 업적을 균형 잡힌 시각과 다양한 각도에서 조망하여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시대를 원망하지 않고 주어진 본분과 역할에 최선을 다하면서, 나눔을 몸소 실천한 장계향의 일생은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과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 책에서는 학문적 감회나 철학적 사색이 느껴지는 장계향의 작품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신분의 장벽을 넘어 사람에게 공감하고 시대의 고통을 절감하며 남긴 작품들을 통해 여성이라는 한계를 뛰어 넘어 실천적 성리학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는 장계향을 만날 수 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중 서애 류성룡의 정치적 개혁정신과 인간평등 사상 역시 장계향에게 영향을 끼쳤다. 아버지 장흥효의 제자 이시명과 혼인한 후 나랏골 충효당의 큰살림을 도맡게 된 장계향은 어른들의 허락 하에 재령 이씨의 재물을 구휼에 사용했다. 신분에 구애 받지 않고 겸손과 덕으로 노복들에게도 인격적 대우를 행했다. 이시명과 장계향은 정당하게 상속받은 재산이 있었지만 스스로 먹을 것을 만들어 사는 가난한 삶을 택했다. 인류애적 나눔, 지식과 실천 사이의 모순을 극복하고자 물적 소유의 떳떳함을 선택한 장계향의 삶은 이기심이 만연하는 자본주의 시대에 이웃과의 소통과 공존에 대한 교훈을 준다.
장계향을 이야기하면서 음식디미방을 빼놓을 수 없다. 한 가지 재료로는 맛을 낼 수 없고, 한 가지 색깔만으로는 무늬를 만들 수 없으며, 똑같은 소리로는 화음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것들이 섞여 다양한 차이가 어우러지고 통일성을 이룬 것이 '맛'이다. 음식의 재료에도 생명이 있으므로 소중히 다루어야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음식은 그 자체로도 조화로운 것이지만 인간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장계향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나눔을 통해 조화로운 삶을 추구했던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음식디미방은 146가지 음식의 조리과정이 한글 구어체로 자세히 적혀 있어 지금도 그대로 재현이 가능하다. 아시아에서 여성에 의해 쓰여진 가장 오래된 조리책이라는 점도 장계향을 빛나게 하는 대목이다.
이동관기자 dkd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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