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사만어] 나고야에서의 회상

무덥기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였다. 며칠 전 나고야(名古屋)시를 찾았을 때는 36.7℃를 오르내렸고, 40도 가까이 육박하기도 했다. 도시 전체가 한증막이나 다름없었고 온몸에서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렇게 지겹게 느껴졌던 대구 날씨가 그리울 정도였다.

나고야는 아이치현(愛知縣)의 현청 소재지로 혼슈 중심부에 자리해 있다. 이곳이 바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전국(戰國)시대의 무장인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3인의 출생지다. 그중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같은 아이치현이지만 나고야에서 자동차로 1시간 정도 걸리는 오카자키(岡崎) 태생이다. 오카자키는 과거에는 미카와(三河)라는 지명으로 불렸고 도쿠가와 막부를 여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던 충성과 의리의 대명사인 '미카와 무사(武士)'의 본향이다.

이들 3인은 발군의 리더십을 발휘한 뛰어난 인물이다. 야마오카 소하치의 소설 '대망'에 잘 나와있듯 각자 독특한 개성과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졌기에 경영학 차원에서도 오랫동안 연구 대상이 돼 왔다. 오다는 개혁적인 천재, 도요토미는 처세와 지략의 달인, 도쿠가와는 은근과 끈기로 난세를 평정한 최후의 승리자였다. 한국인들은 조선을 침략한 도요토미를 '천박한 원숭이' 정도로 경멸하지만 오다와 도쿠가와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들에게서 배울 점은 분명히 많다. 경쟁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처세와 지략의 방법론을 가장 극적인 형태로 제시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고야와 오카자키, 세키가하라를 돌아보면서 이들의 삶과 행적을 더듬어 보는 것은 그리 의미 없는 일이 아니었다.

이들과는 달리, 현재의 일본인에게는 실망감만 느끼게 된다. 일본 여론이 '옛날로 돌아가자'는 아베 신조 총리의 달콤한 유혹에 현혹돼 가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 문제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침략전쟁을 부인하고 과거의 잘못을 정당화하려는 얄팍한 구호에 동조하는 일본인이 갈수록 늘고 있는 것이 큰 문제다. 아베 총리의 정치행태는 세 치 혀와 잔머리로 정권을 잡은 도요토미와 닮아있고, 잔혹한 일제 군국주의자들의 모습과도 겹쳐 있다. 나고야에서 만난 한 대학교수는 아베 총리를 '보수의 원류'라고 표현했지만,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파시즘의 광기와 가까운 듯했다. 오다의 혁신과 도쿠가와의 인내를 배워야 할 이는 우리가 아니라, 아베 총리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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