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水鄕안동'을 리모델링하다] ⑧강길 따라 곳곳에 명품 산책길

예던길'부용대 층길…곳곳에 역사'문화'자연 아우르는 명품 산책길

안동을 가로질러 흐르는 낙동강을 따라 역사와 문화, 유학적 가르침과 선비의 삶, 자연을 함께 아우르는 명품 오솔길과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하회마을 부용대 절벽에는 서애선생이 형인 겸암선생을 만나러 다녔던
안동을 가로질러 흐르는 낙동강을 따라 역사와 문화, 유학적 가르침과 선비의 삶, 자연을 함께 아우르는 명품 오솔길과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하회마을 부용대 절벽에는 서애선생이 형인 겸암선생을 만나러 다녔던 '층 길'(친길)이 있다. 엄재진기자
39.6㎞에 이르는
39.6㎞에 이르는 '선비문화길'은 안동시 풍산읍 낙암정에서 안동시 풍천면 구담리 구담교까지 낙동강 물길을 따라 전통마을과 너른 들을 지나고 병산과 하회마을, 구담 습지를 지난다(왼쪽) . 안동시 도산면 용수사와 용두산, 태자리 일대에는 신라 천년의 영광을 부흥하려 했던 마의태자와 얽힌 지명들이 산재해 있다(오른쪽). 엄재진기자
안동댐 보조호수를 끼고 한바퀴(법흥교∼석빙고∼월영교)를 휘돌아 걸을 수 있는
안동댐 보조호수를 끼고 한바퀴(법흥교∼석빙고∼월영교)를 휘돌아 걸을 수 있는 '안동호반 나들이길'은 안동 도심 속에 자리한 가족과 연인들의 산책로로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안동시 제공
안동시 도산면 단천리를 시작으로 청량산까지 이어지는 퇴계 예던길은 퇴계 선생이 시대와 인간에 대한 깊은 사색의 시공간으로 걸었던 길이다. 안동시 제공
안동시 도산면 단천리를 시작으로 청량산까지 이어지는 퇴계 예던길은 퇴계 선생이 시대와 인간에 대한 깊은 사색의 시공간으로 걸었던 길이다. 안동시 제공

안동을 가로지르는 낙동강을 따라 역사와 문화, 유학적 가르침과 선비의 삶, 자연을 함께 아우르는 오솔길과 산책로가 곳곳에 조성돼 있다. 퇴계 선생이 시대와 인간에 대한 깊은 사색을 하며 걸었던 '퇴계 예던길'(녀뎐길)부터 신라 마지막 태자의 역사가 흐르는 '마의태자길', 퇴계 선생과 후학들이 주자가 노래했던 무이구곡을 흠모해 꾸몄던 도산구곡길 등 역사가 흐르는 길이 있다.

안동시가 수변도시로 탈바꿈하면서 낙동강을 따라 조성한 오솔길과 안동호반을 한 바퀴 휘돌아 걸을 수 있는 '안동호반 나들이길' 등 자연친화적인 길도 있다. 병산서원과 하회마을을 오가며 유학적 삶을 이어갔던 '선비의 길'과 겸암과 서애의 형제애가 오롯이 남아 전해오는 부용대 친길 등에는 사람의 삶과 향기가 묻어나는 호젓함도 있다.

◆낙동강 따라 조성되는 오솔길

안동댐에서 시작해 민속박물관~월영교~임청각(7층 전탑)~영호루까지 이어지는 '호반길' 10㎞가 개설되고 영호루~낙동강~옥수교~한계마을~검암습지~낙암정~낙동강생태학습관에는 '공민왕길' 12㎞가 조성된다. 안동댐 보조호수를 한 바퀴(법흥교∼석빙고∼월영교)를 휘돌아 걸을 수 있는 '안동호반 나들이길'은 안동 도심 속에 있어 가족과 연인들의 산책로로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위해 안동시는 40억원을 들여 법흥교에서 민속촌 내 석빙고까지 1.5m 너비의 산책로와 팔각정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 코스가 완공되면 안동호반은 물론 안동댐 진입로와 영남산 등산로, 안동문화관광단지와도 연결돼 나들이 코스로 각광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안동호반 나들이길은 음악분수 및 백조공원, 자전거도로 등 친수공간으로 조성된 낙동강 둔치와 안동댐, 안동문화관광단지, 민속박물관, 야외민속촌, 석빙고, 개목나루터 등 주변 관광코스와 연계돼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낼 전망이다.

◆퇴계 이황의 '녀던길'

안동에는 '녀던길'도 있다. 도산서원에서 낙동강 상류 굽이 따라 이어지는 이 길은 퇴계 이황이 청량산을 오가던 오솔길이다. '녀던길'이란 말은 퇴계의 시 '도산 12곡'에서 유래했다. 이 길은 퇴계의 발자취가 스며 있는 길이다. 중국의 주자(朱子)가 무이산을 예찬했듯이 퇴계는 어린 시절 머물며 공부했던 청량산을 무척 사랑했다. 도산서원은 물론 농암 이현보의 종택과 이육사문학관 등 역사 이야기들이 서려 있는 옛길이기도 하다.

찾는 사람이 드물어 퇴계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조용히 사색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이육사문학관에서 길을 따라 1.4㎞쯤 간 뒤 왼쪽으로 접어들어 단천교 왼쪽으로 꺾으면 '녀던길'이라는 표지판에서 길이 시작된다.

안동시는 3억원을 투입해 도산면 단천리에서 가송리 가사리 마을까지 수변 탐방로 4.2㎞를 정비했다. 이 도산 예던길 생태탐방로는 도산7곡(단사곡)과 8곡(고산곡) 사이의 학소대, 미천장담, 한속담, 벽력암, 농암종택, 월명담, 고산정은 물론 낙동강과 청량산이 어우러진 수려한 자연경관을 조망할 수 있다.

◆마의태자길

'마의태자길'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길이다. 신라 마지막 왕자로서 고국을 떠나야 했던 비운의 왕자 마의태자가 머물렀던 흔적이 산재해 있는 곳이다.

안동시 도산면과 봉화군 상운면 일대에는 마의태자를 둘러싼 의문을 풀 수 있는 흔적들이 남아 있다. 안동시는 3대 문화권 사업의 하나로 마의태자 길과 퇴계 예던길을 새롭게 조성하고 있다.

마의태자길은 도산면 용수사 산신각에서 시작된다. 절 뒤편 오솔길을 따라 1㎞쯤 가다 보면 을미사변 때 불탄 영은암 자리가 나오고 조금 더 올라가면 마의태자가 경주 땅을 바라보던 '마의대'(麻衣臺)가 나온다. 마의대에 앉아 바라보면 앞쪽은 신라 수도인 경주를 향해 있고 오른쪽에는 국망봉이, 왼쪽으로는 건지산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산길을 따라 굽이굽이 3㎞를 더 가면 마의태자 전설을 간직한 '태자리'와 '태자사'가 나온다.

용두산에는 마의태자를 연상시키는 지명이 빼곡하다. 고려 의종 때 국왕원찰로 지목됐던 용수사에는 마의당과 월오관이라는 건물이 있다. 봉화군 상운면에는 신라리라는 마을이 있으며 명호면에는 관창리라는 지명도 있다. 만리봉'투구봉'건지산'국망봉'달래재길과 월오리 등에는 망국의 한을 달래고 신라 재건을 위해 절치부심하던 흔적들이 남아 있다.

◆바람의 언덕 하늘길

풍산읍 마애리 앞을 흐르는 낙동강을 망천이라 부른다. 중국의 절경 중 하나로 꼽히는 망천처럼 아름답다는 뜻이다. 이곳 절벽에는 자연을 벗 삼아 걸을 수 있는 '바람의 언덕, 하늘길'이 있다. 망천을 호위하듯 둘러싼 절벽보다 위쪽으로 하늘과 맞닿은 능선길이다. 인근에는 낙동강생태교육관과 단호샌드파크, 하아그린파크 등 많은 볼거리와 놀거리들이 있다.

'하늘길'은 마애선사유적전시관을 지나 단호교를 건너자마자 오른쪽으로 길을 잡으면 만날 수 있다. 단호교에서 바라보면 능선을 굽이치는 산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자락 아래 검암습지를 오른편에 두고 길을 오른다.

최성달 안동시 역사기록관은 "부부싸움을 한 뒤에 걸어가면 좋은 길"이라고 했다. 수려한 계곡이 흐르는 길도 아니고, 깎아지르는 절벽이 감탄사를 내뱉게 하는 길도 아니다. 어찌 보면 재미없을 이 길을 걷다 보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지 않을 수 없다.

길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함께한 사람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길. 서너 굽이를 돌아 능선에 올라서면 저 아래 낙동강이 휘돌아 나가고, 가까이는 마애리가, 멀리는 풍산 땅이 한눈에 들어온다. 어디선가 불어온 한 줄기 바람이 등줄기를 서늘하게 한다. 강변엔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하더니 역시 '바람의 언덕'답게 산바람이 살랑살랑 교태를 부린다. 미운 마음도 술술 풀릴 법하다.

◆선비문화길

안동 '선비문화길'에는 다양한 삶이 서려 있다. 글 읽는 선비의 이야기와 어려운 세상을 현명하게 살았던 어머니의 이야기가 있다. 추운 겨울 편찮으신 부모님을 위해 잉어를 구해온 효자와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했던 선조들의 이야기, 의좋은 형제 이야기가 있다. 재미있는 산신령의 이야기와 도깨비 전설을 듣고 또 보태며 걸었던 나그네 이야기도 담겨 있다.

'선비문화길'은 39.6㎞에 이른다. 안동시 풍산읍 낙암정에서 안동시 풍천면 구담리 구담교까지 낙동강 물길을 따라 전통마을과 너른 들을 지나고 병산과 하회마을, 구담습지를 지난다. 낙암정을 시작으로 풍산 한지공장까지 이어지는 유교문화길 1구간인 '풍산들길'(14.5㎞)에는 낙동강생태학습관과 낙강정, 오미리 보호수, 마애석불좌상, 마애선사유적지, 예안 이씨 충효당과 종택, 침류정, 풍산장터와 정효각 등 문화재들이 빼곡하다.

선비문화길의 백미인 2구간은 13.7㎞의 '하회마을길'이다. 소산마을과 병산서원, 하회마을, 마을을 둘러싼 자연경관과 마을 사람들에 얽힌 이야기들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병산서원을 출발해 하회마을까지 이어지는 화산 산길과 낙동강 강변길은 병풍처럼 둘러쳐진 병산(屛山)의 절경과 선비의 삶을 체험할 수 있다. 3구간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태의 소중함을 체험할 수 있는 '구담습지길'(10.6㎞)이다.

하회마을 입구를 출발해 부용대와 화천서원을 지나며 서애 류성룡과 그의 형 겸암 류운룡의 형제애를 느낄 수 있다. 특히 낙동강 개발공사로 인해 사라질 처지인 구담습지를 통해 환경의 소중함도 느낄 수 있다.

◆겸암'서애 형제들의 부용대 층길

하회마을 부용대 절벽 우측에는 옥연정사가 있고 반대편 절벽 끝자락에는 겸암정사가 마주해 있다.

서애와 겸암 형제의 우애는 부용대 절벽에 좁다랗게 난 '층길'(친길)에서 고스란히 전해온다. 1586년 옥연정사를 지은 서애 선생이 반대편 겸암정사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던 형을 만나러 갔던 길이다.

이 층길은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180년 전 하회마을 그림에서도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정도로 좁은 절벽길 500여m에는 서애 선생이 아침저녁으로 형을 찾아갔던 발자국의 여운이 느껴진다.

발아래로는 깎아지른 절벽과 바위, 낙동강 물결이 정신을 아찔하게 한다. 머리 위로는 까마득한 층층바위가 덮치듯 내려다본다. 층길이 끝날 즈음 눈앞에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가로막는다. 이 나무들도 서애가 먼저 세상을 떠난 형님을 그리워하며 제자들과 함께 심었다고 전한다.

향나무와 상수리나무로 둘러싸인 겸암정사는 입암 절벽 위에 버티고 서서 하회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내 형님 정자 지어 겸암이라 이름 지었네, 대나무 그림자 섬돌을 쓸어내리고 매화는 뜰 가득 피어 있구나, 발끝엔 향그런 풀냄새 모이고 호젓한 길에는 흰 안개 피어나네, 그리움 눈물 되어 소리없이 내리고 강물도 소리내며 밤새 흐르네.' 겸암정사 입구에 새겨진 시 '겸암사'에는 형을 향한 서애의 애틋함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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