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폐암 남편과 뇌병변 딸을 돌보는 임수연 씨

식물인간 남편 돌보다 집에 가면 1급 장애 8세 딸

임수연 씨가 병원에서 치료 중인 남편을 간호하고 있다. 지난해 6월에 쓰러진 뒤 남편의 몸은 점점 더 굳어가고 체력과 기운도 점점 약해지고 있어 걱정이 크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임수연 씨가 병원에서 치료 중인 남편을 간호하고 있다. 지난해 6월에 쓰러진 뒤 남편의 몸은 점점 더 굳어가고 체력과 기운도 점점 약해지고 있어 걱정이 크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아들, 밥 먹었어? 뭐 먹었어? 누나랑 사이좋게 지내고 있어야 해."

15일 오후 대구 남구 대명동의 한 재활병원. 오랜만에 걸려온 아들의 전화에 임수연(37'여'대구 서구 평리동) 씨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지난해 남편 신종필(39) 씨가 쓰러지고 난 뒤부터 임 씨는 집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남편의 병간호에 매달리다 보니 아들, 딸과는 주말에도 보기 힘든 상황이 됐다. 아직 엄마의 보살핌이 절실한 시기인데다 딸은 뇌병변 1급 장애까지 있다 보니 남편을 간호하다가도 아이들만 생각하면 임 씨는 눈물이 앞을 가린다.

◆"나 폐암이야" 문자로 말해

남편은 어릴 때부터 기관지가 약했던 탓에 기침이 심했다. 남편의 기침 증세는 점점 심해지더니 가래에 피까지 섞여 나오기 시작했다. 동네 병원에서는 "심한 기침에 기관지가 상처를 입어 그런 것"이라고 해서 '약 먹으면 낫겠지'하는 생각에 그냥 참고 넘겼다.

2010년 겨울 어느 날, 갑자기 장염에 걸려 내과의원을 찾았다가 내친김에 '심한 기침' 진찰까지 받았다. 내과에서는 천식이라고 했다. 한 달 넘게 치료를 받았지만 차도는 없었다. 내과에서는 종합병원을 가 보라 했고, 한 대학병원에서 정밀진단을 받았다. 결과가 나온 날 남편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결과가 궁금해 계속 물어봐도 남편은 '나중에 말해줄게'라고만 하더라구요. 남편이 답을 안 해 나도 살짝 짜증을 냈어요. 그날 애들을 재운 뒤 방에서 나오는데 휴대전화 문자 벨이 울렸어요. 남편이 보낸 문자 내용은 '말하기 어려워서 바로 말을 못했다. 기관지랑 폐에 암이 생겼다더라' 였어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죠."

암 선고 충격에 힘들어 할 새도 없이 임 씨는 남편의 암 투병을 뒷바라지해야 했다. 2011년 1월, 남편은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기관지와 오른쪽 폐 일부를 떼어내는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잘라낸 기관지 부분이 재생되면서 그 부분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 바람에 기관지가 좁아져 숨 쉬는 것도 힘들어졌다. 게다가 남편이 앓고 있는 암을 치료할 수 있는 항암제가 없다는 말도 들었다. 임 씨와 남편은 어떻게든 완치가 될 거라는 희망을 갖고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치료를 받았다.

그러던 지난해 6월 어느 날, 이날도 임 씨와 남편은 서울로 가기 위해 서대구고속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숨을 쉬지 못하고 쓰러졌다. 남편의 몸은 이내 새파래졌다. 기침을 하다 가래가 기도를 막아버려 저산소증이 온 것이다. 대학병원 응급실에 실려온 남편은 심폐소생술을 통해 겨우 살아났지만, 숨을 쉬지 못한 시간이 길어지는 바람에 뇌가 손상돼 식물인간상태가 됐다.

◆뇌병변 딸, 외로운 아들

임 씨는 남편 간호 중에도 늘 뇌병변 1급 장애를 앓는 딸 아영(8)이와 아들 민석(가명'5)이 걱정을 한다. 매일 병원에서 남편을 간호해야 해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좀체 집에 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딸 아영이가 앓고 있는 병은 한두 개가 아니다. 뇌병변 1급 장애에다 수면무호흡증, 오목 가슴, 척추측만증까지 앓고 있다.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뇌량이 다른 아이들보다 얇은 상태로 태어나 정상적인 발육조차 기대할 수 없다. 오목 가슴과 척추측만증 치료를 받고 싶어도 치료 중에 척추나 뼈가 다칠 수 있어 쉽게 시도하지 못하고 있다. 2011년 9월에 오목 가슴을 펴기 위해 갈비뼈 쪽에 심을 박아 가슴을 반듯하게 만드는 수술을 받았다. 최근 딸을 본 임 씨는 딸의 가슴에 박힌 심이 뒤틀려져 보여 '혹시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하는 생각에 조마조마하다.

"아영이가 왜 그렇게 아프게 태어났는지 모르겠어요. 뭔가 원인이 있다면 그걸 찾아 고치면 되는데 가는 병원마다 아영이가 왜 이렇게 아픈지 원인을 몰라요. 아영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너무 막막해요."

임 씨는 최근 아들 민석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의 전화를 받고 민석이에 대한 걱정이 더 커졌다. 어린이집 보육 교사가 "민석이가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갑자기 생겼고, 친구들을 괴롭히거나 소리지르는 등 말썽을 많이 피운다"고 말한 것.

시어머니가 남편의 간호를 도와주러 오실 때 가끔 집에 가면 아들은 임 씨에게 "엄마, 같이 살고 싶어요. 가지 말고 집에서 같이 자요"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을 때면 임 씨의 가슴을 찢어진다.

"엄마에게 얼마나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지 집에서도 누나 이름 먼저 부르면 엉엉 울어요. 저도 아영이와 민석이 데리고 놀이공원에도 가고 옆에서 책도 읽어주고 싶은데, 그것조차도 못하네요."

◆가슴을 짓누르는 남편과 딸 치료비

남편이 쓰러진 뒤 임 씨 가족의 수입원은 기초생활수급대상자 지원금과 장애수당을 포함 130만원이 전부다. 남편의 치료비는 매달 최소 50만원 이상 꼬박꼬박 들어간다. 병원비뿐만 아니라 기저귀, 물티슈, 거즈, 영양식 등을 마련하는 비용도 20만원을 훌쩍 넘어간다. 아이들은 시어머니가 맡아 돌보고 있다. 그래서 없는 살림에 시어머니에게 조금이나마 용돈을 드린다. 그렇게 돈을 지출하고 나면 항상 지출이 수입을 넘어선다. 남편이 아프기 전 일 하면서 모아둔 돈도 이제 바닥을 드러냈다.

남편의 치료비와 함께 아영이의 수술비도 걱정이다. 아영이의 오목 가슴 교정을 위해 박은 철심을 오는 9월에는 빼내는 제거 수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술비를 마련할 방법이 없어 수술은 꿈도 못 꾸고 있다. 더군다나 남편이 쓰러지기 전까지 계속 받아오던 아영이의 전문재활치료도 남편이 쓰러지고 난 뒤부터는 중단됐다. 또래 친구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아영이는 장애아동 전용 어린이집에 다닌다. 도저히 입학을 시킬 정도의 몸 상태가 아닌데다 어린이집을 떠나면 그나마 1주일에 두 번 정도는 받을 수 있었던 물리치료도 못 받기 때문에 입학유예를 해 놓은 상태다.

남편이 갑자기 '그르릉, 그르릉' 소리를 내자 임 씨는 재빨리 남편의 목에 뚫려 있는 구멍에 호스를 꽂고 고여 있는 가래를 빼낸다. 남편이 배고플까 봐 주사기와 위장에 연결된 호스를 이용해 물과 영양식을 넣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1년 동안 간호하고 있지만 몸이 점점 굳어져 가는 남편을 보며 임 씨도 조금씩 지쳐간다.

"지금 저의 유일한 소원은 예전처럼 다시 모여서 사는 거예요. 매일 온갖 치료를 받으며 힘들어하는 남편과 엄마를 그리워하는 두 아이를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쏟아져요. 이 고통은 언제 끝날까요."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매일신문사'입니다.

※매일신문'대한적십자사 공동기획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