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백열전구 'OFF'…1887년 경복궁 첫 점등, 전기 많이 먹어 결국 퇴출

자주 꺼지고 돈 들고…건달 닮아서 '건달불'로 불려

1887년 3월 6일 저녁, 어스름이 짙게 깔린 경복궁 내 건천궁.

작은 불빛이 깜빡거리는가 싶더니 눈 부신 빛을 발한다. 갑자기 주위가 환해졌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탄성을 질렀다. 생전 처음 보는 불빛의 엄청난 밝기에 놀라 이리저리 숨는 구경꾼도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백열전구가 점등된 순간이었다.

하지만 백열전구가 내년 1월부터 우리나라에서 퇴출된다. 경복궁에 최초로 도입된 이후 127년 만이다.

◆근현대사의 등불 백열전구  

백열전구는 1879년 미국의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과 영국의 조셉 윌슨 스완이 발명했다. 백열전구는 프로메테우스의 불 이후 인류가 발견한 '두 번째 불'로 불리며 사람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우리나라에는 에디슨의 발명 이후 불과 8년 만에 백열전구가 도입됐다. 당시에는 자주 꺼지고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게 꼭 건달 같다고 해서 '건달불'(乾達火)로도 불렸다.

민간에 백열전구가 보급된 것은 1898년 서울에 한성전기주식회사가 설립돼 배전설비를 통해 전기가 공급되면서부터다.

최초의 생산은 일본인들에 의해 1910년 전구 공장이 부산에 세워지면서 시작됐고 임전구제작소(1935년), 금강전구(1940년), 조선기업(1943년) 등 국내 전구 제조사들이 생겨났다.

미국에서는 윌리엄 쿨리지가 1910년 백열전구의 필라멘트 수명을 연장시킨 텅스텐 필라멘트 전구를 발명했다.

그러나 백열전구는 '전력은 적게 쓰고, 수명은 오래가는' LED 램프 등 대체 조명기기가 도입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백열전구는 전력 사용량 중 5%만 빛을 내는 데 사용하고 95%는 열에너지로 발산해 대표적 저효율 조명기기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백열전구는 전국적으로 6천200만여개가 보급됐으나 현재 3천만개 수준까지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연간 판매량도 2008년 1천860만개에서 지난해 1천50만개로 줄어 현재 약 3천만개가 설치돼 있으며 주로 화장실·베란다 등의 간헐 조명, 재래상가, 양계농가 등에서 사용된다. 백열전구 생산업체는 국내에서 대구의 (주)일광 1개사밖에 없으며 대부분 중국 등지에서 수입한다.

◆내년부터 생산'수입금지

산업통상자원부는 16일 2008년 12월 발표한 백열전구 퇴출 계획에 따라 예정대로 2014년 1월부터 국내 시장에서 백열전구의 생산 및 수입을 전면 중단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 2008년 제4차 에너지이용 합리화 기본계획을 통해 백열전구를 시장에서 퇴출하기로 결정했다. 2009년 두 차례 공청회가 열리고 2010년 관련 고시가 개정되면서 퇴출 절차가 속속 진행됐다. 이어 작년 1월부터 70W 이상 150W 미만 백열전구가 1단계로 퇴출되고 내년 1월부터 나머지 25W 이상 70W 미만 백열전구까지 시장에서 사라지게 됐다.

130여년간 인류의 삶을 개선해왔지만 동시에 전기에너지의 95%를 열로 발산해 낭비하는 대표적 저효율 조명기기라는 오명을 써온 백열전구는 이로써 일반 가정과 사무실, 공장 등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됐다.

이미 70W 이상 150W 미만 백열전구는 작년 1월부터 강화된 최저소비효율 기준을 적용해 퇴출을 유도했으며 내년 1월부터 나머지 25W 이상 70W 미만 백열전구의 퇴출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산업부는 설명했다.

해외 주요 국가도 백열전구를 퇴출하는 추세다. 미국은 내년부터 60W, 40W 이상 백열전구의 생산·판매를 금지한다. 유럽연합(EU)은 작년부터 금지했고 중국도 내년 10월부터 60W 이상, 2016년 10월부터 15W 이상 백열전구의 판매를 막는다.

백열전구가 완전히 교체되면 국가적으로 연간 약 1천800GWh 이상 전력(50만∼65만가구의 연간 전력량)이 절감되고 전력부하 감소 효과도 200㎿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두 가지 램프는 백열전구와 동일한 소켓을 사용하기 때문에 별도 시공 없이 제품만 교체할 수 있다. 공공부문에서는 이미 8천202개 공공기관에서 백열전구 21만여개(99%)를 퇴출했다. 유통부문에서도 대형 유통업체 등과 업무협약을 통해 LED 판매존 등을 구축할 계획이다.

산업부 채희봉 에너지수요관리정책단장은 "정부는 백열전구 퇴출에 따른 국민의 불편과 시장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안정기내장형 램프, LED 램프 등 고효율 조명기기를 차질 없이 시장에 보급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노경석기자 nk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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