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물타기 공세가 최선인가

민주당발 '막말'이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먼저 홍익표 전 민주당 원내대변인이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 '귀태(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박정희 전 대통령을 지칭)의 후손'이라고 해 물의를 빚었다. 이해찬 민주당 상임고문은 "박정희가 누구이고 누구한테 죽었나. 박 씨 집안은 안기부, 정보부와 그렇게 인연이 질긴가. 이제 국정원과 단절하고 공정한 나라를 만들어 달라. 그래야, 당신의 정통성이 유지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비극적인 가족사를 거칠게 거론하면서 박 대통령을 '당신'으로 지칭한 것이 문제가 됐다. 민주당의 임내현 의원은 이에 앞서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과 수사 축소'은폐 의혹에 대해 상응한 조치가 없으면 '대선 원천 무효 투쟁'이 제기될 수 있다고 주장, 파문을 일으켰다.

민주당 인사들이 대통령에 대해 예우를 하지 않고 감정 섞인 언사를 늘어놓은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대선 불복성 발언'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런데 새누리당이 민주당에 대해 연일 대선에 불복하는 것이 아니냐며 정확한 입장을 밝히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좀 과하다. 민주당이 대선에 불복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을 밝혔지만 그래도 대선에 불복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공세는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과 NLL(북방한계선) 대화록 사전 유출 및 대선 활용 의혹을 차단하려는 물타기용으로 해석된다.

이해찬 고문의 말이 거칠었지만, 그 맥락을 살펴보면 박 대통령이 국정원 문제 해결을 위해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원세훈 전 원장 체제의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한 부분을 검찰 수사와 국회 국정조사를 통해 밝히고 NLL 대화록 발췌본을 공개한 남재준 원장을 해임하는 것이 해결책이다. NLL 대화록이 사전에 유출돼 대선에 활용된 의혹 역시 진상 조사를 벌여 관련자를 처벌하고 대통령이 사과하는 선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순리이다. 민주당도 대선에 불복한다는 것이 아니라 국정원 문제를 납득할 만한 수준에서 매듭지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 핵심은 국정원 문제를 버려두고 용인하고 있다. 청와대의 방침이 그러하니 여당인 새누리당도 물타기용 공세로 국면을 이끌어가고 있다. 대선 개입이 드러나자 국정원이 NLL 대화록 발췌본을 공개해 국면을 전환하려 했을 때에도 새누리당은 이에 편승해 '안보 공세'로 일관했다.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는 '꼼수 정치'였다. 새누리당 내에 이러한 흐름을 우려하는 의원들도 있으나 그들의 목소리는 작거나 묻힐 뿐이다. 물타기 공세를 주도하는 의원들이 정말 그러한 인식에 따라 주장을 펼치는 것인지, 내심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이재오 의원의 말처럼 청와대가 가는 길이 잘못되면 제어할 수 있어야 하는데 여당이 청와대와 국정원의 뒤처리에만 급급하니 답답할 뿐이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과 정치 개입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한 중대한 사안이다. 새누리당이 이에 대해 물타기 공세를 이어나가면서 국회 국정원 국정조사도 공방거리를 만들어 흐지부지된다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다. 아니면 박 대통령과 여당이 이를 어물쩍 넘기려다가 사태를 더 키울 우려도 있다. 그러나 물타기 공세가 먹혀들더라도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한 정권과 여당'이라는 낙인이 찍힐 수 있다. 그렇지 않으려면 박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나 지금으로서는 그 가능성이 크지 않아 보인다.

박 대통령이 국가 발전과 국민 행복을 위해 강한 사명감으로 노력하는 지도자라는 점만은 분명히 각인돼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투철하지 않아 그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것 같지는 않다. 국정원의 NLL 회의록 발췌본 공개가 국정원 단독으로 이뤄진 것인지, 청와대와 교감이 있은 후에 이뤄진 것인지 불분명하고 이후 남 원장에 대해 신임을 거둬들이지 않는 데에서 그러한 측면을 유추할 수 있다. 이명박 정권이 민간인 불법 사찰, 방송 공공성 훼손 등으로 손가락질받는 것도 민주주의적 가치에 소홀했거나 외면했기 때문이었다. 박근혜 정권은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지만 비슷한 경로에 접어들고 있고 새누리당도 한몫 거들고 있다. 국정원 문제가 곤혹스럽더라도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가 필요하나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며 얼마 남지 않은 적기를 놓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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