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3시쯤 대구시 동구 용계동 돈지봉 자락. 초입에 너비 1~2m의 흙으로 된 산길 한쪽이 길쭉하게 움푹 패어 있었다. 올 장마 때 정비되지 않은 산길을 따라 빗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산길에서 50여m 떨어진 곳에는 개 200여 마리가 사육되고 있었다. 개털이 사방으로 날렸고 배설물의 지린내가 코를 찔렀다. 개 사육장 주위는 옥수수와 고추, 상추 등을 심는 텃밭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산길 곳곳에는 쓰레기를 태운 그을음 자국이 있었다. 허물어져 가는 한 폐가의 슬레이트 지붕은 군데군데 떨어진 채 방치돼 있었고 주위에 비닐봉지와 페트병 등 생활쓰레기가 널려 있었다. 1987년 5월 근린공원 예정지로 지정된 '돈지봉공원'은 사유지 비중이 높은 관계로 투입돼야 할 예산이 많아 공원 조성에 애를 먹고 있다.
오랫동안 조성이 미뤄지고 있는 공원 예정지에 대해 지정 해제를 요구하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법에 따라 조성이 완료되지 않은 공원 예정지 중 2000년 이전에 지정돼 장기 미집행으로 남아 있는 곳은 2020년이면 '자동 해제'된다. 주민들은 높은 사유지 비중으로 부지 매입이 어려워 사실상 공원 조성이 불가능한 곳에 대해선 2020년 이전에 대구시가 나서서 해제해 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대구시는 현재 녹지공간이 부족한 형편이기에 다른 대안 녹지 마련 없이 공원 예정지를 해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조성 힘든 공원 부지 해제해야"
돈지봉공원은 예정 면적(47만1천630㎡)의 75.3%(35만5천212㎡)가 사유지인데 이 중 약 16%(5만8천㎡)만을 사들인 상태다. 공원 조성 예산 518억원 중 11%인 57억원 정도만 투입된 상태로 지정된 지 26년째지만 정비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문제는 2020년까지 조성을 마치지 않을 경우 장기 미집행 도시계획시설 가운데 하나로서 공원 지정이 해제된다는 것. 국토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는 '도시'군계획시설 결정은 그 고시일부터 20년이 되는 날의 다음날에 그 효력을 잃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공원 조성이 미뤄지자 주민들은 재산권을 침해해 온 공원 지정을 아예 해제하거나, 2020년 이후 활용 계획을 준비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돈지봉 인근 동네에서 태어나 현재까지 생활하고 있는 서병태(54) 씨는 "공원 지정 이후 오랜 기간 차일피일 조성이 늦어지면서 허가 없이 수리가 불가능해 허물어져 가는 주택과 방치된 폐가들이 늘어가는 상태"라며 "그동안 과정을 보면 앞으로 2020년까지 공원 조성은 힘들기 때문에 지정을 해제하는 것이 동네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병권(76'동구 용계동) 씨는 "돈지봉공원 부지 내 토지 소유자 중에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이 많아 사유지 매입이 쉽지 않은 것"이라며 "공원으로 묶어 두면서 인근 마을까지 제대로 된 진입도로와 운동시설도 없이 낙후돼 있기 때문에 차라리 해제 등의 방안을 강구해 재개발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배영수(79) 씨는 "조속하게 계획된 공원을 조성하든지 그것이 힘들다면 2020년 자동해제를 대비해 돈지봉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도시계획이 필요하다"고 했다.
◆시의회 "해제 권고"…대구시 "수용 불가"
대구시의회는 지난해 공원(앞산공원 5만4천579㎡)이 포함된 '장기 미집행 도시계획시설 해제 권고안'을 의결했다. 이는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 2011년 개정돼 지난해 4월부터 시행됨에 따른 것이다. 즉 시장은 고시일로부터 10년이 지나도록 사업 시행이 되지 않은 도시계획시설 현황을 지방의회에 보고해야 하고, 보고를 받은 지방의회는 시장에게 해제를 권고할 수 있게 됐다. 시장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1년 이내 해제 결정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대구시는 올해 5월 주변 산지와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공원 지정 해제 권고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대성 대구시의원(건설환경위원회)은 "현재까지 진행 경과와 사유지 비중 등 여러 상황을 감안했을 때 앞으로 7년 뒤 어차피 해제될 수밖에 없는 공원 예정지에 대해선 시의회의 해제 권고를 거부할 이유가 없다"며 "정부의 부지 매입 예산만 기다리면서 2020년 자동 해제를 당할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순차적인 해제를 통해 여러 활용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구시는 현재도 녹지공간이 부족한 실정에서 공원 예정지를 해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법이 정한 도시공원 면적은 1인당 6㎡이지만 지난해 말 기준으로 대구시는 5.51㎡에 불과한 실정이다.
대구시 공원녹지과 관계자는 "무작정 해제할 경우 수익을 노린 민간사업자들이 녹지공간에 아파트나 다가구주택 등을 짓는 등 난개발될 우려가 있다"며 "당장 주민들이 요구하는 몇몇 곳만 해제했을 경우 다른 예정지와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것"이라고 했다. 이어 "5년마다 수립하는 공원관리계획이 2015년 초면 발표되기 때문에 그때에 맞춰 공원 예정지 중 해제할 곳과 추가 지정할 곳을 정하는 등 대구시의 전체 계획 아래에서 결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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