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득렬의 서양고전 이야기] 단테의 '신곡'

최악의 지옥 가는 자는 친구·은인 배신자

이탈리아가 낳은 세계적인 문호 단테(A. Dante'1265∼1321)는 '신곡' '신생' '향연' 등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그는 거의 독학으로 방대한 독서를 하며, 지적 시야를 넓혀나갔다. 정치적 신념의 차이로 도시국가인 피렌체로부터 추방령을 받아 죽을 때까지 귀국하지 못하고 방랑생활을 했지만 좌절하지 않고 학문과 예술에 큰 공헌을 남겼다.

그동안 중역본 '신곡'이 애독되어 왔지만, 최근에 들어 이탈리아어를 직접 번역한 책들이 출간되고 있다. 서해문집에서 펴낸 한형곤 역 '신곡'도 그것들 중의 하나이다. '신곡'은 매우 난해한 책이어서, 평생에 걸쳐 이 책만 연구하는 학자들도 많다.

이 책을 이해하려면 '성경'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있어야 한다. 저자는 '성경'을 바탕으로 지옥, 연옥, 천국에 대해 독특한 시어를 사용하여 묘사하고 있다. '성경'에는 연옥이라는 말이 없지만, 가톨릭교회에 도입된 연옥 개념을 활용하여 그곳에 간 영혼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신곡'은 지옥, 연옥, 천국에 각각 33곡을 배정하고, 서곡으로 한 곡을 지옥 앞에 넣어 모두 100곡으로 구성돼 있다. 한 곡은 150행 전후의 길이이며, 아주 간결하고 함축적으로 장면들을 묘사하고 있다. 이 책이 출간된 14세기에는 독자들이 주석 없이 읽을 수 있었겠지만, 현대인은 주석 없이는 '신곡'을 이해할 수 없다. 수많은 연구자들이 오랜 연구를 통해 주석을 첨가해왔다.

단테는 살아있는 몸으로 위대한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아 지옥과 연옥을 여행한다. 천국은 구원의 연인 베아트리체가 안내한다. 세 곳을 여행하면서 단테는 수많은 영혼들을 만난다. 누가 어느 곳에 있는가는 단테의 상상과 판단에 따라 결정된다. 독자들은 단테의 영혼 배정에 대해 당황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할 것이다. 작고한 지 얼마 안 된 영혼을 지옥에 배정한 것을 두고, 이후 후손들이 강력하게 항의했을 법도 하다.

가장 흥미를 끄는 곳은 지옥이다. 어린이들의 영혼과 위대한 인물이면서도 예수를 알지 못한 영혼은 지옥의 제1원인 림보에 배정되었다. 우리는 지옥의 가장 고통스러운 곳에 어떤 죄인이 배정되었는지 궁금해 한다. 단테는 조국, 친구, 은인을 배반한 영혼을 그곳에 배정하고 있다. 그가 이렇게 한 것은 아마도 자연법을 어긴 영혼이 가장 죄질이 나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보은의 의무라는 자연법을 가지고 있다.

신득렬 전 계명대 교수 paideia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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