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들의 좌충우돌 여행기인 '꽃보다 할배'가 인기입니다. 특히 젊은이들이 아주 좋아한다고 합니다. 사실 이 프로그램의 예고편을 보면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이젠 노인들까지 등장시켜 웃음거리로 만들려고 하는구나 싶어서였지요.
그런데 방송 후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궁금해서 재방송을 봤지요. 이 프로그램이 뜨는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나이 듦이 주는 미덕이 가장 돋보였습니다. 에펠탑을 보며 남과 다른 삶을 살아가기를 젊은이들에게 주문하고, 개선문에 올라 옛것을 너무 쉽게 무너뜨리는 우리들을 되돌아보는 멘트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습니다.
'꽃보다 할배'들은 결코 시청자들에게 강요하거나 무엇을 알리려고 하지 않았지요. 그냥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그런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내용을 독백처럼 전달했을 뿐입니다. 그들은 대놓고 아는 척을 하지 않았으며 나서지도 않았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할배들의 살아온 무게감과 꾸밈없는 담담함이 그들의 진정성을 드러내 주었던 것이지요. 그것은 큰소리를 내지 않아도 굳이 떠벌리지 않아도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얼마 전 신문에서 이런 내용을 읽었지요. '밤이 선생이다'는 책을 낸 문학평론가는 인터뷰에서 사람은 재물을 저축할 뿐 아니라 시간도 저축한다고 했습니다. 그날의 기억밖에 없는 삶은 그날 벌어 그날 먹는 삶보다 더 슬프다고 했습니다.
나이 듦은 시간의 저축물이며 시간의 발효 과정이라는 생각을 가져봤습니다. 인생의 쓴맛 단맛 오묘한 맛들이 시간의 작용에 의해서 담백한 맛으로 변화해가는 것이지요. 젊은이들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이유입니다.
평균 나이 76세 할아버지들의 여행. '이런 여행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나지막한 한 할배의 말에 가슴 뭉클 한 것은 그 말의 깊이와 의미에 충분히 공감했기 때문입니다.
말이라는 것이 크게 한다고 그 울림이 큰 것이 아닐 것입니다. 힘준다고 그 말에 무게가 실리는 것은 더더욱 아닐 것입니다. 시간을 거치며 마음으로 익어간 진정성과 진실성만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겠지요.
세상의 말들은 너무 가볍고 너무 시끄럽습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할배 할매들이 많았으면 하는 까닭입니다.
김순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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