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한국의 만델라

남아공에서 온 원어민 교사와 식사를 하다가 남아공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이 누구인지를 물어보았다. 원어민 교사의 말로는 박지성, 김연아, 싸이, 그리고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에 출연한 배두나가 유명하다고 했다. 역사적 인물이나 정치인 중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가장 유명한데, 김 전 대통령은 '한국의 만델라'로 불린다고 했다.

자신이 표현하려고 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는 듣는 사람이 가진 배경 지식을 충분하게 이용하는 것이다. 남아공 사람들은 만델라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남아공 사람들에게 김 전 대통령의 생애를 구구절절이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한국의 만델라'와 같은 표현이 더 효과적인 표현이 될 수 있다. 한국인으로서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맹활약을 하는 손흥민 선수를 '제2의 차범근'으로 표현을 하는 것도 이와 같은 원리로 표현하는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예들을 학술적인 용어로 분석하면, 듣는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만델라, 차범근, 류현진'을 '배경'이라고 하고, 소개하려고 하는 '김대중, 손흥민, 노성호'를 '전경'이라고 한다. 이 표현이 성립하려면 전경과 배경 사이에는 공통점이 존재하고, 배경은 전경보다 더 잘 알려진 것이어야 한다. 축구선수 메시를 '제2의 마라도나'라고 한 적이 있었지만, 이제는 메시가 마라도나보다 더 유명해졌는데, 이처럼 전경과 배경의 관계는 유동적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은 우리나라에서는 만델라를 '남아공의 김대중'과 같은 방식으로 잘 표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경이 되어야 할 외국의 유명인들은 배경이 되어야 할 한국인보다 항상 더 유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 원인은 한국에 인물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한국인의 한국인에 대한 평가는 너무나 박하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99가지 부족한 점이 있어도 1가지 위대한 점이 있다면 위인으로 띄워 주지만, 우리나라는 99가지 위대함이 있어도 1가지 결점을 가지고 깎아 내린다. 에디슨은 슈퍼 갑 노릇을 했던 악덕 기업주에다 아들하고 재산 문제로 소송을 벌일 정도로 인간성은 별로였다. 헬렌 켈러는 매우 적극적인 좌파 운동가였다. 아마 이들이 한국에 있었으면 세계 위인전에 절대로 나올 수가 없었을 것이다.

외국의 위인들과 비교해 본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도 한국의 위인으로 세계에 충분히 내놓을 수 있는 인물들이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대한민국의 자산인 인물들을 알리려 하기 보다는 정쟁의 중심에 놓고 나쁜 쪽으로만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 서글플 따름이다.

능인고교사 chamt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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