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포스트 이승엽을 기다리며

2013올스타전 홈런레이스에서 삼성 라이온즈 이승엽의 우승을 보면서 '역시 이승엽이구나' 하는 감탄과 함께 '아직도 이승엽인가'라는 안타까움이 교차했다. 홈런레이스라는 게 올스타전을 달구는 이벤트지만 서른일곱의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쟁쟁한 후배들을 물리치는 걸 보며 '홈런 대명사' 이승엽의 건재를 확인했다는 반가움과 마음 한편엔 이승엽을 뛰어넘을 거포는 정녕 없는가 하는 한국 프로야구의 현실을 더듬게 돼서다.

시간을 돌려 전반기로 가보자. 신생구단의 합류 속에 크고 작은 기록이 새롭게 쓰였고, 예전의 판도를 바꾸는 치열한 순위 다툼이 흥미를 돋웠다. 그러나 전반기 최고의 이슈메이커는 이승엽이었다. 은퇴한 양준혁이 보유한 개인통산 최다홈런기록을 갈아치운 그의 홈런 행진에 스포트라이트가 향했다.

이승엽은 일본 진출로 8년간 자리를 비웠음에도 국내 복귀 후 별 어려움 없이 '홈런=이승엽'이라는 공식을 성립시켰다.

이는 국내 프로야구가 거포 갈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증거다.

전반기, 국내에선 박병호(넥센)가 19개의 홈런을 터뜨려 선두다. 산술적 계산대로라면 올해 홈런왕도 30개 초반 대에서 결정 날 가능성이 크다. 팬들은 3년째 30개 초반의 홈런왕에 박수를 보내야 할 판이다.

류현진(LA)과 이대호(오릭스)의 활약으로 관심이 부쩍 높아진 미국과 일본은 어떤가.

메이저리그는 전반기에만 37개의 홈런을 친 크리스 데이비스(볼티모어)가 2001년 배리 본즈(73홈런) 이후 명맥이 끊긴 60홈런 타자 반열에 오를지를 두고 들떠 있다. 역대 메이저리그에서 60홈런 이상을 친 선수는 베이브 루스, 로저 매리스, 마크 맥과이어, 새미 소사, 배리 본즈 등 5명뿐이다.

일본에선 외국인 선수 발렌티엔(야쿠르트)이 32개의 홈런을 날려 일본 프로야구 한 시즌 최다이면서 2003년 이승엽이 기록했던 아시아 기록을 갈아치울지에 주목하고 있다. 일본 역시 2003년 터피 로즈(51홈런) 이후 50홈런 타자가 사라져 로즈의 홈런 행진에 고무된 표정이다.

미'일 두 거포가 전반기에 쳐낸 홈런 수보다 적을지 모를 홈런왕 탄생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야구 강국을 물리쳤다며 채워넣었던 한국야구의 자부심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리지도 모른다.

우즈'이승엽'심정수 등이 홈런레이스를 흠뻑 달궜던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의 홈런 황금기 이후 10년 가까이 겪는 거포 부재 현상은 분명히 이유가 있다.

5년 만에 부활한 1차 지명에서 넥센을 제외한 7개 구단이 투수를 선택한 데서 볼 수 있듯 최근 프로구단의 신인 선택은 투수 쪽으로 편향돼 있다. 지역 한 고교 야구감독은 "타격에 재능이 있어도 장래를 생각해 투수로 전향하는 사례가 많다. 그나마도 타자 경우엔 나무배트 사용으로 홈런보다는 맞히는 스윙에 주력하고 있다"고 했다.

싹조차 틔우지 못하는 현실에서 대형 거포의 탄생은 기대하기 어렵다. 게다가 프로구단의 외국인 선수 또한 전원 투수다. 재목도 경쟁자도 없는 구도다.

이대로라면 이승엽을 능가하는 대형 거포의 탄생을 기대하는 것은 '개천에서 용'이 나길 바라는 것과 다름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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