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또 보는 방학 사진

며칠 전, 해마다 이즈음이면 보는 사진을 또 보았다. 미용실에서 차례를 기다리다가 신문을 집어드는 찰나, 방학을 맞은 아이들이 신나는 표정으로 교문 밖을 나서는 사진이 확 눈길을 당겼다. 신문에 난 사진은 아이들의 환호성이 하늘로 피어오르는 소리까지 잘 담아낸 수작이었다. 밝은 얼굴빛, 활기찬 몸놀림, 솟구친 가방, 그리고 함박웃음 가득한 입까지.

저렇게 신이 날까? 나도 저 나이 때는 방학 날이 저처럼 즐거웠었나? 만약 그랬다면, 그 이후 내게 저만큼 흥에 겨웠던 시간이 또 있었던가? 사진을 보노라니 정말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다만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매년 유사한 시기에 비슷한 사진을 되풀이하여 보면서 그때마다 동일한 궁금증을 느껴왔다는 점이다. 무릇 동어반복은 바람직하지 않은데 말이다. 그것은 잔소리가 되고, 자발성도 창의성도 없는 지루한 삶의 상징이니까. 이상이 말한 '권태' 바로 그것이니까.

우리나라 아이들은 집보다도 학교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즉,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 때문에 아이들이 저토록 기쁨을 느낀다는 것은 한국 교육에 깊은 병이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것은 직장인이 휴가를 반가워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현대인들은 대부분 생활을 위해 직장에 나간다. 아이들은 빈집을 떠나 학교에 맡겨진다. 그런데 그곳에는 가르침이 있고, 또래의 친구들이 있다. 생계유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니면 진리를 깨닫는 기쁨이 있고, 함께 노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날마다 가는 곳, 그곳이 바로 학교인 것이다.

그런데 왜? 진리와 놀이가 있는 곳을 떠나면서 아이들이 저렇게 좋아하나? 우리의 학교는 어째서 진리를 깨닫는 즐거움과 함께 어울려 노는 즐거움을 아이들에게 안겨주지 못하나?

이런저런 생각에 젖어 있는데, 누군가의 눈길이 손등에 뜨겁게 느껴진다. 아차! 그이는 내가 신문을 내려놓기를 줄곧 기다리고 있구나. 신문이 내 손을 떠난다.

갑자기 무료해진 나는 동네 미용실의 낡은 진열장을 살핀다. 책이라고는 단 두 권밖에 없다. 그것도 일반 책이 아니라 월간 잡지이다. 어쩌리. 꿩 대신 닭이라고 했으니.

월간지는 표지로 중요 내용을 말한다. 이번 호 표지의 글자들 중에는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 그 후'가 가장 세차게 부각되어 있다. 나는 차마 잡지를 펼치지 못한다. 반복되는 사진, 반복되는 사건, 반복되는 변명들이 더위에 지친 나를 더욱 지치게 만든 탓이다.

정연지<대구미술광장 입주화가 gogoyonj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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