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막말과 더블스피크, 그리고 정치

예로부터 정치인은 신뢰하기 어렵고 필요하면 막말도 서슴지 않는 집단이었던가 보다. 18세기 말 프랑스의 저명한 정치인이었던 탈레이랑은 말에 대해 "사람이 생각한 바를 거짓으로 꾸미기 위해 인간에게 부여된 것"이라고 봤다. 반면 17세기 프랑스 극작가 몰리에르는 "말은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사람에게 부여된 것"이며 "마음의 대변자이자 혼의 자태"라고 정의했다. 사용하는 사람의 직업이나 마음에 따라 말은 '거짓을 창조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고 '마음의 충실한 대변자'가 되기도 한다.

정치권의 막말 논란이 숙지지 않고 있다. 정치권의 막말이 문제가 된 것은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상대방을 흥분하게 하고 지지층을 자극하는 효과 때문에 막말은 강렬할수록 좋다. 정치권의 막말은 특히 국가 통수권자인 대통령을 겨냥했을 때 무지막지해진다.

최근 민주당 홍익표 의원의 귀태(鬼胎'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들이 태어났다는 뜻) 발언이나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의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다카키 마사오 발언도 이 까닭이다. 막말에선 북한이 한 수 위다. 지금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NLL 논란에 처음 불을 지핀 것도 북한의 막말이다. 지난해 대선이 한창이던 때 북은 당시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NLL 관련 언론 인터뷰를 트집 잡아 논평을 내놨다. "괴뢰 대통령 후보로 나선 박근혜 '년'까지 주제넘게 입에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년의 떠벌임이나 다른 괴뢰 당국자들의 주장은 그 어느 것이나 예외 없이 북남 공동 합의의 경위와 내용조차 모르는 무지의 표현"이라며 막말을 쏟아냈다. 당시 박 후보는 경위 파악에 나섰고 곧이어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파문이 불거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북한도 말을 조심할 필요가 있다. '존엄'은 그쪽에만 있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에게도 있다"고 점잖게 꾸짖은 이유도 거기에 있다.

막말이라면 새누리당인들 결코 자유롭지 않다. 김대중정부 시절 김홍신 전 한나라당 의원은 "김 대통령의 입을 공업용 미싱으로 꿰매야 한다"고 해 공분을 샀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한나라당 의원들은 '개구리' '노가리' 심지어 '무뇌'란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엊그제 여'야 막말 금지 공동선언을 하자고 제안했다. 정치인의 말은 영향력이 커서 한 번 실수하면 정치 생명이 끝나기도 하고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오점이 되기도 하니 서로 막말을 하지 말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황 대표는 여운이 채 가시지도 않아 "예전부터 사초 관련 범죄는 참수로 벌했다"고 말했다. 회의록 실종 사건을 두고 노무현정부 시절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민주당 문재인 의원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문 의원의 "이제 NLL 논란 끝내자"는 성명에 당혹해하던 민주당이 '섬뜩하다'고 했을 정도니 다시 막말 수준이다.

미국 영어교사협회는 지난 1974년부터 해마다 '더블스피크상'을 선정 발표한다. "애매모호하고 핵심을 벗어나며 사안의 본질을 흐리는 언어"를 탁월하게 구사한 사람이나 단체를 뽑아 상을 내린다. 더블스피크는 나쁜 것을 좋게,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으로, 불쾌한 것을 매력적인 것처럼 위장하는 데 사용된다. 그러니 이 상이 갖는 이미지는 정치인의 막말만큼이나 부정적이다. 하지만 막말이 상대방을 자극하기 위해 사용된다면 더블스피크는 반대로 그 자극을 줄이기 위해 사용된다.

이 상에 구사된 언어 하나하나는 막말에 익숙한 우리 정치인들이 곱씹어볼 만하다. 이에 따르면 전쟁은 '캠페인'이 되고, 폭격은 '공중 지원'이 된다. 폭격 대상으로서의 사람은 '부드러운 목표물', 건물은 '딱딱한 목표물'로 둔갑한다. 우호적인 집단에 의해 저질러지는 '살해'(killing)는 '불법적이거나 자의적인 생명의 박탈'로 미화된다, 테러 용의자들을 상대로 저질러졌던 고문은 없었던 일이 되고 '정보 획득을 위해 특이한 방법'이 사용되었을 뿐이다.

다산은 목민심서에서 목민관은 말을 많이 하지 말고 갑자기 성내지도 말라(毋多言 毋暴怒'무다언 무폭노)고 강조했다. 공직자가 쓸데없는 말을 해서 평지풍파를 일으키지 말라는 경고다. 사리 분별 없이 핏대를 올리지도 말아야 한다. 민생은 제쳐 두고 막말 정치에 익숙한 정치인들이 잘 새겨야 할 덕목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