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축구와 정치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전은 처녀 출전한 세네갈이 전 대회 우승팀인 프랑스를 1대 0으로 눌러 역대 월드컵 개막전 중 가장 충격적인 결과를 낳았다. 이 경기는 여러 화젯거리도 낳았다. 세네갈은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였는데 당시 세네갈의 브루노 메추 감독은 프랑스인이었고 프랑스 대표팀에는 세네갈 출신인 파트리크 비에이라가 뛰고 있었다. 경기 이후 세네갈이 식민 피해를 안겼던 프랑스에 승리해 통쾌해했다는 반응이 표면적으로 나타나지 않았지만, 프랑스의 자존심은 크게 손상됐었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에 패배한 아르헨티나가 4년 뒤 멕시코 월드컵에서 디에고 마라도나의 활약으로 영국을 물리친 것도 양국의 과거사가 얽힌 경기였다. 이후 앙숙인 두 팀은 월드컵이나 국가 대항전에서 만날 때마다 치열한 경기를 펼쳤다. 독일과 네덜란드가 겨루는 축구 경기도 언제나 뜨겁다. 세계 2차대전 때 독일에 점령됐던 상처가 있는 네덜란드 축구 팬은 독일과 만나면 거대한 오렌지 물결을 이뤄 거친 응원을 펼친다.

한국과 일본 간의 축구 경기는 다른 앙숙 국가들 간의 대결보다 더 치열하다.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는 일본과 만나면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투지를 갖고 경기에 임한다. 다른 스포츠 종목에서도 한'일 대결이 뜨겁기는 마찬가지이지만 몸과 몸이 강하게 부딪치는 축구 경기에서 한국 축구 팬들은 더욱 승리를 갈망하며 이겼을 때 강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28일 열린 동아시아컵 축구대회에서 한국이 일본에 1대 2로 패해 우리 축구 팬들의 실망이 크다. 일본을 압도하고도 두 차례의 역습에서 골을 허용, 아쉬움을 남겼다. 경기 시작 전 일본 응원단이 욱일승천기를 잠시 펼쳤고 우리 붉은 악마 응원단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가 제지당하는 소동도 있었다. 경기장에서 응원 시 정치적 주장을 금지한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에 어긋나기 때문이었다.

FIFA의 규정은 스포츠가 정치에 오염되거나 불상사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는 타당성이 있지만, 축구가 내셔널리즘이 강한 스포츠라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양국 축구 팬들이 정치적 주장을 담은 응원을 자제하되 선수들에게 열정을 불어넣는 수밖에 없다. 한국 대표팀이 골 결정력을 보완해 다음에는 일본을 통쾌하게 이겨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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