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특성화고에서 왜 '인문 소양 교육'이 중요할까

얼마 전 취업 논술을 준비했던 3학년 학생이 대기업에 합격했다. 2학년 때부터 여러 개의 전공 자격증을 구비하고 어울토론 캠프, 취업 캠프, 논술 면접 캠프 등에 열심히 참여한 학생이었다. 선배들의 연이은 취업 소식을 접한 후배들도 '해보자'는 열의가 넘친다. 학교의 '취업 기초능력 향상과 인성 함양 프로그램'이 결실을 거두고 있다. 인성 함양을 위해 우리 학교에서는 기본 생활질서 의식 키우기와 함께 인문학적 소양 갖추기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인문학은 '인간다움'이나 '바람직한 삶의 가치'를 찾는 학문이다. 인문학 공부는 주로 독서, 토론으로 이뤄진다. 우리 학교는 독서 열기가 매우 뜨겁다. 학생들은 책상 위에 한두 권의 책을 항상 쌓아두고 있다. 책을 읽을 때 학생들의 얼굴에 맺히는 맑은 미소를 본 사람은 안다. 학생들의 마음 바탕이 매일 한 뼘씩 넓어지고, 여린 각오가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음을 말이다.

어울토론 캠프에서 '왕따는 왕따 당할 만한 행동을 한다'는 주제로 토론을 한 적이 있다. 많은 학생들이 이 논제에 찬성표를 던졌다. 하지만 그 토론은 '왕따 당할 만한 행동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내가 그 아이를 괴롭혀도 되는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로 결론났다. 학생들은 평상시 자신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논리적 결함, 즉 '상대방의 기분 나쁜 행동→내 폭력의 정당화'라는 연결고리의 허위와 간교함을 직접 찾아낸 것이다.

이처럼 토론은 인습과 불합리의 세계를 다시 보게 해주고 바람직한 삶의 가치와 인간다움을 찾아가는 가교 역할을 한다. 교사들이 가르치는 것은 토론의 규칙과 진행 방법이지만, 학생들이 배우는 것은 함께 하는 즐거움, 짜릿한 성취감, 따스한 경청과 자아존중감이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시(詩)는 우리 삶에 별로 이익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이익 없음으로 시가 필요하다'고 했다. 시는 인문학이다. 인문학은 당장 밥과 집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공고생들에게 인문학이라니?'라며 의아해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사람다움을 지켜내고, 행복하고 평화로운 공동체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인문학이 필요하다. 학생들이 앞으로 건강한 시민이 되고,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우수한 인재가 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인문 소양 교육은 특성화고에 꼭 필요하다.

이금희 대구공고 수석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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