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선 10여 년 전부터 관심을 끌기 시작한 도시농업은 이제 막 걸음을 뗐다. 최근에야 도시민 개개인이 소일거리 삼아 텃밭 가꾸기 정도로 생각하던 도시농업이 도시생활의 한 흐름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대구시도 올해 들어 '도시 농부 만들기' 프로젝트를 계획했다. 41억6천만원을 들여 2017년까지 도시 농부를 대구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25만 명까지 늘리기 위해 다양한 기반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도시농업 발전을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입을 모은다. 개념 정립부터 제도적 장치 마련 등 여러 가지가 요구되고 있다.
◆개념 정립부터 하자
전문가들은 도시농업의 개념이 확립되지 않아 적잖은 혼란을 주고 있다며 개념 정립이 필요하다는 견해다. 현재는 도시민들이 도심의 자투리땅에서 농사를 짓는 것으로, 레저나 취미생활 정도로 여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장소성과 관계없이 도시민들이 농업에 관계하는 활동으로 도시농업 개념을 넓힐 필요가 있다는 것.
대구사회연구소 전충훈 전략사회국장은 "도시농업의 궁극적 목표가 농촌농업을 활성화하고 농업이 자신의 자리를 찾는 것"이라며 "도시농업은 농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도시민들이 농촌 주말농장을 이용하거나 귀농하는 활동 등도 도시농업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경북대 원예과학과 임기병 교수는 "장소성에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도시농업과 농촌농업이 마치 반대 개념으로 사용된다. 도시농업은 결국 인간의 심신을 치유하면서 인간 본연의 가치를 살리는 활동이기 때문에 도시민이 농촌에서 텃밭을 가꾸면서 심신을 치유하는 행위도 도시농업이다"고 했다.
도시농업 개념이 불명확해 먹거리 생산이나 산업적인 측면이 강조되기도 한다. 이는 자칫 농촌농업과의 대립으로 비칠 수도 있다.
임 교수는 "먹거리 생산은 도시농업을 하면서 나오는 부수적인 효과이며 도시농업 활성화를 통해 생겨나는 일자리 또한 본질이 아니다"고 말했다.
산업이 강조되면서 주목받고 있는 것이 식물공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식물공장은 집약된 시설에서 수익을 내기 위해 식물을 생산하는 원리이기 때문에 도시농업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다고 했다.
도시민들이 도시농업을 하면서 느끼는 여러 가치를 계량화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도시민이 농사를 짓게 되면서 농업의 가치와 본질을 새롭게 알게 됐다. 더 나아가 경작과 생존의 기술까지도 연결되면서 농사에 대한 소중함을 새삼 깨닫고 있다. 하지만 다양한 가치를 느끼면서도 이를 구체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다.
대구경북연구원 석태문 박사는 "도시농업 전문가들을 많이 배출해 도시민들이 구체적인 효과를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사례 수집과 통계를 내는 등 계량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도시계획과도 연계돼야
도시농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도시계획을 수립하는 단계에서 도심 내 유휴지를 고려해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 도시계획에서 시설물을 배치할 때 도시농업 공간을 필수시설로 만드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것. 석 박사는 "도시계획상의 조경시설은 필수로 지정하는 만큼 조경 내 일부 공간을 도시농업을 할 수 있는 시설물로 정하는 제도적 뒷받침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아파트를 분양할 때 일정 부분을 텃밭으로 조성하는 것을 제도화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실제로 최근 분양되는 일부 아파트는 건축 단계부터 텃밭을 일정 부분 조성해 분양하고 있다. 옥상 녹화를 일정 부분 의무화하거나 옥상에 배관이나 방수 등을 할 수 있도록 건축법 개정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경작 가이드라인도 필요하다. 세계적으로 도시농업의 모범사례로 꼽히는 쿠바는 화학비료와 농약 사용, 비닐 덮기 등을 금지하면서 국가적으로 철저히 유기농업을 지향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서울 강동구가 지자체 차원에서 농약, 화학비료, 비닐 덮기 등을 사용하지 않는 '3무(無)'를 철저히 지키고 있다. 이처럼 지역에서도 무분별한 경작을 방지하기 위한 기준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 국장은 "도시농업에서 나오는 수확물을 농촌과 비교해 거의 소량이라 도심의 자투리땅을 농지로 인정하고 수확물을 농산물로 인정하는 방안도 조심스럽게 논의될 시점에 왔다"고 말했다.
◆파머스마켓 활성화 뒤따라야
파머스마켓(farmer's market)을 도시농업 영역으로 끌어들여 활성화에 힘써야 한다는 의견이다. 도시농업이 앞서가는 선진국에서는 도시민과 농민의 직거래장터인 파머스마켓이 활발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파머스마켓 활성화는 도시농업을 키우고 도시와 농촌의 상생에 필수 요건으로 여겨지는 것. 지역에서도 파머스마켓이 일부 운영되고 있지만 활성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강북마을공동체는 칠곡군 동명면에서 직거래 매장을 운영하고 있고 도시철도 2호선 문양역에서도 3년 전부터 로컬푸드 직매장이 열리고 있다. 전 국장은 "농민들이 파머스마켓을 통해 농작물을 팔려고 해도 노하우가 없다. 이에 대한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파머스마켓 활성화를 위해 공동 브랜드나 공동 마케팅 노력도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도시민들이 도시농업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도 필요하다. 도시농업에 대한 관심은 무척 커졌지만 막상 개인이 텃밭을 가꾸고 도시농업에 관여하려고 해도 이를 손쉽게 유도할 만한 루트가 없다는 것. 석 박사는 "다양한 씨앗과 농기구 등 도시농업 관련 용품을 종합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전문 안테나숍을 대구시에서 운영하고 나중에 민간에 위탁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했다.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 갖춰야
도시농업 교육에 대한 표준화도 시급하다. 지역에서는 대구녹색소비자연대나 농업기술센터 등에서 교육을 하고 있고 대구시교육청도 도시농업 교육을 추진하고 있는 등 앞으로 교육이 활발하게 이뤄질 전망이다. 하지만 교육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혼란을 일으킨다는 지적이다. 어느 단체는 유기농만 강조하고 다른 단체는 농사짓는 데 초점이 맞춰져 교육이 이뤄지는 것. 강사로서의 자격 기준도 별도로 없어 전반적으로 강사 라이선스 관리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농업기술센터 등 총괄기관을 정해 모든 교육을 모아서 이를 구체적으로 표준화하고 자격증을 제도화하는 방안도 고려해봐야 한다. 교육 프로그램 다양화도 주문하고 있다. 현재 농사기술에 대한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도시농업과 다른 분야와의 연계 협력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고 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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