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호동락] 영천 화북 옥간정·모고헌

바람을 가르며 찾아간 옛 건축물에서 미적 체험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우리나라의 건축미에 푹 빠져 버렸다. 개성과 건축 비법이 다른 건축물을 보고 있으면 문틀 하나, 손잡이 하나에도 만든 이의 정성과 의미가 느껴졌다. 갈 때마다, 볼 때마다 의미와 느끼는 감동이 다르다. 그래서 아무리 봐도 지겹지가 않다. 그 멋스러움에 반해 헤어나올 수가 없게 되었다.

이번 여행도 아름다운 건축의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떠났다. 목적지는 영천 화북. 영천으로 가는 들녘에는 포도와 복숭아, 사과 등이 탐스럽게 열려 있었다. 과일을 보자마자 입안에는 침이 고였다. 어릴 적 했던 과일 서리를 해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꾹 참았다.

영천시 화북면 횡계리에 위치한 옥간정(玉澗亭)은 조선 숙종 때 성리학자인 훈수 정만영 선생과 지수 규양 선생 형제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숙종 42년(1716년)에 세운 정자이다. 형제는 1730년 옥간정에서 강의를 시작해 100명에 이르는 제자를 가르쳐 당대의 유명한 현인들을 길러냈다. 옥간정은 대지의 높낮이를 이용해 전면을 다락집으로 꾸미고 뒤쪽은 아담한 단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연환경에 순응한 독특한 평면구성과 창호수법 등이 특징이다.

옆으로 횡계구곡이 흐르고 있다. 옥간정은 횡계9곡 중 3곡에 있다. 우렁찬 물소리는 더위마저 가시게 해 선풍기도, 에어컨도, 손부채도 필요 없었다. 그리고 옥간정 화단에는 영춘화(어사화)가 매우 많이 피어 있었다. 느낌이 좋아 마루에 걸터앉아 영춘화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옥간정 마루는 윤기가 날 정도로 깨끗이 닦여 있었다. 팔베개를 하고 마루에 누었다. 피곤했던지 저절로 눈이 감겼다. 한동안 가만히 누워 있었다. 한참을 머문 후 그곳에서 200m 정도 떨어져 있는 모고헌(募古軒)으로 향했다. 모고헌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자 가운데 하나라고 안내자가 말했다. 정규양이 지어 '태고와'라 이름했으며 영조 때 문인들이 개축하면서 '모고헌'이라 했다. 정자 앞에는 300년 된 향나무가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모고헌은 양면 2칸 옆면 2칸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을 하고 있었고 4면에 툇간을 둔 독특한 건물이었다. 횡계계곡 아래서 올려다보니 누각이 곧 하늘로 날아갈 듯 멋지고 단아한 모습이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정자여서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화려하지도 않고 웅장하지도 않은데 어떻게 사람의 손으로 이렇게 아름답고 섬세하고 우아한 정자를 지었는지 바로 앞에서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한동안 건축미를 감상했다.

건물 주위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차를 타고 지나가면 그냥 지나쳐도 모를 정도로 무성했다. 길이길이 보존해야 할 문화재를 좀 더 신경을 써서 관리했으면 하고 바랐다.

그렇게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게 해준 조상들께 감사했다. 내 눈에는 눈물이 날만큼 아름다웠다. 타임머신을 타고 당시의 시간 속으로 들어간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요즘, 나는 자전거로 이런 건축물을 찾아가는 시간이 너무나 즐겁고 행복하다. 쇠붙이 하나 박지도 않았는데 수백 년의 세월을 견디어 온 건물이 너무 신기하다. 그리고 건물이 너무 아름답다. 그 속에 담긴 조상의 정신과 멋은 또 어떻고. 보면 볼수록 아름답고 고개가 숙여진다. 이번 여행도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될 것 같다. 한 번쯤 꼭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모고헌의 아름다움에 반해 모고헌 사진을 컴퓨터 바탕화면으로 깔아놓았다. 옥간정과 모고헌의 아름다운 감동을 마음속에 오래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다.

윤혜정(자전거타기운동본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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