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예수성심시녀회의 의료사업…루이 델랑드 신부 문화훈장 받아

1934년 영천 용평본당 무료진료소, 1957년 포항 송정리 나환자 진료

1958년 사제관 앞에 버려진 아이들을 발견한 루이 델랑드 신부(왼쪽)와 수녀들의 모습. 예수성심시녀회 제공
1958년 사제관 앞에 버려진 아이들을 발견한 루이 델랑드 신부(왼쪽)와 수녀들의 모습. 예수성심시녀회 제공

예수성심시녀회의 설립자인 루이 델랑드(Louis Deslandes) 신부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의무병으로 일하면서 배웠던 의학기술과 프랑스에서 보내온 약품을 기반으로 1934년 경북 영천 용평본당에 무료진료소를 개설했다.

개원 준비를 위해 정 예노파(정 마리아 수녀)와 홍 도미질라를 대구 성요셉무료진료소(당시 샬트르 성 바오로회에서 운영)에 보내 3개월간 약 조제법과 처방법을 배워오게 해 무료진료소 기반을 튼튼히 했다. 진료소에서 루이 델랑드 신부는 의사로서 치료를 담당했고, 신자가 아닌 이웃 마을사람들도 무료로 치료해 주었다. 아울러 영천본당을 거쳐 1950년 3월 포항 송정리로 이주할 때까지 무료 진료사업을 계속했으며, 이주한 뒤에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무료진료소를 운영했다.

아울러 델랑드 신부는 영천에서 무료 진료사업을 하던 중 1936년 수녀들이 맡아 기르던 아이의 아버지인 나환자를 도우면서 나환자 구료사업과 연관을 맺게 됐다. 이후 한국에서 활동한 미국 최초의 외방전교회인 메리놀회 스위니(Joseph A. Sweeney) 신부가 자신이 하던 나환자 구제사업에 수녀들을 보내달라는 요청을 해 왔다.

델랑드 신부는 1956년 12월 20일 당시 간호사이던 김장주 벨라뎃다 수녀와 김순덕 라파엘 수녀를 나환자 이동 진료반에 파견했다. 스위니 신부의 도움으로 1957년 5월 포항 송정리에 나환자 진료소인 다미엔피부진료소가 설치되고, 의사도 한 명 파견됐다. 이후 의사와 수녀 2명이 경북 동해안 일대와 울릉도, 충청도, 전라도를 돌며 진료를 했다.

한편 루이 델랑드(한국 이름 남대영) 신부는 1895년 6월 13일 프랑스 망쉬 빠리니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1922년 12월 23일 파리외방전교회 사제로 서품돼 1923년 6월 5일 한국에 첫발을 내디뎠다. 1935년 현재 예수성심시녀회의 모체인 삼덕당(三德堂)을 설립했으며, 그 후 병든 할머니 한 명과 어린 고아 2명을 데려다 함께 생활하며 사회사업을 시작해 1946년 사회복지법인 성모자애원을 공식 설립했고, 1950년부터 수도회 설립에 전념해 현재 예수성심시녀회를 있게 했다.

한국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62년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받았고, 1969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Legion d'Honneur)를 받았다. 수도회 자립 후 1965년 은퇴한 델랑드 신부는 경북 포항시 갈평리로 거처를 옮긴 뒤 꾸준히 사회복지 활동을 계속했고, 사제 서품 50주년이던 1972년 11월 17일 새벽 77세로 생을 마쳤다.

김수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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