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00세 시대 은퇴의 재발견] <2부>행복한 은퇴자들 (22)울릉도 섬 소년 박경원 씨

바다에 꽂힌 소년, 울릉도에서 인생항로를 찾다

울릉도에 오면 아름다운 경치뿐 아니라 문화도 보여주고 싶었다는 박 씨. 그는 서각이 멋지게 서 있는 공원에 앉아 석양을 바라보는 것이 최고의 즐거움이라고 했다.
울릉도에 오면 아름다운 경치뿐 아니라 문화도 보여주고 싶었다는 박 씨. 그는 서각이 멋지게 서 있는 공원에 앉아 석양을 바라보는 것이 최고의 즐거움이라고 했다.
울릉도에서 오징어축제가 열릴 때면 그는 서예 퍼포먼스도 선보인다. 박 씨는 관광객뿐 아니라 섬사람들에게도 문화를 접할 기회를 자주 선사하고 싶다고 했다.
울릉도에서 오징어축제가 열릴 때면 그는 서예 퍼포먼스도 선보인다. 박 씨는 관광객뿐 아니라 섬사람들에게도 문화를 접할 기회를 자주 선사하고 싶다고 했다.

바다를 처음 본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기차 타고 버스 타고 어렵게 만난 포항 바다였다. 바다는 푸르렀고 아련했다. 그날 이후 바다는 그에게 꿈이 되었다.

그는 바다가 좋아 해군을 지원했고 1985년에는 아예 해양경찰의 길로 들어섰다. 해양경찰을 하면서 동해의 한 섬 울릉도에 꽂혔다. 2년만 있겠다며 갔던 울릉도에서 그는 새로운 꿈을 찾았다. 40대 중반이었다. 모두가 말렸으나 직장을 걷어차고 새로운 인생에 도전했다. 공원이었다. 해양경찰을 그만두고 공원을 만들겠다고 하자 모두들 미쳤다고 했다. 이룰 수 없는 꿈이라고 했다. 3년 뒤인 2007년, 그는 바다가 보이는 멋진 곳에 보기 드문 문자조각공원인 '예림원'을 만들고야 말았다.

박경원(53'경북 울릉군 북면 현포2리) 씨. 그는 공원을 조성하면서 라면 사먹을 돈이 없어 굶기도 했지만 힘든 시간도 지나갔다. 이제는 바다가 보인다고 했다.

청도 시골소년의 길고 먼 바다 이야기를 들어봤다.

-바다의 무엇이 그렇게 매력적인가.

"한마디로 바다는 유혹이다. 나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만큼 그것은 강렬하다. 바다에 살면서 아직도 바다가 그립다. 그것이 바다의 매력이다. 바다는 사람의 가슴과 마음을 키운다. 이보다 더 큰 에너지가 어디 있겠는가."

-지금, 아무도 부럽지 않다고 했다.

"40대 중반 공원을 만들겠다며 경찰을 그만둔다고 하자 모두들 미친놈이라고 했다. 열이면 열 사람 모두 말렸다. 그러나 한번 하겠다고 하면 하고 마는 내 고집을 아무도 꺾을 수 없었다. 멋진 공원을 만들 자신도 있었고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확신도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장소 선택에서부터 문자공원을 한 것까지 모두가 잘한 결정이었다. 관광객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다. 이런 멋진 곳이 일터이고 그 일터를 보고 모두들 행복해 하니 대통령보다 더 나은 것이 아닌가. 하하."

-어떻게 문자조각공원을 생각하게 됐나.

"문화가 있는 울릉도를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울릉도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는 것도 좋지만 이곳의 자연과 어울리는 문화공간이 있으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서예를 오랫동안 해온 터라 글자와 어울리는 공원을 만들고 싶었다. 무엇보다 문자공원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 않은가."

-경찰과 문화 어딘가 어색한 조합이다.

"편견이다. 경찰이라면 문화를 등지고 살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이다. 고향이 청도다. 어릴 때 무척 가난했지만 손재주 하나는 타고났다. 천재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웃음) 초등학교 때 서예 대표로 뽑힐 만큼 서예에 흥미가 있었다. 직장을 가지고부터 본격적으로 서예를 배워 심사위원도 했고 각종 공모전에서 여러 번 수상도 했다. 그리고 10년 전부터 서각을 공부했다. 울릉도에 와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서예 지도도 했다."

-공원 입구에 있는 '꽃잎이 떨어져 바람인가 했더니 세월이더라'는 글이 아주 좋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 대개가 그 글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모두들 세월을 한 번 생각해 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귀를 택했다. 아름다운 바다와 울릉도의 바람과 각종 꽃과 나무 서각들을 보면서 세월과 인생을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장소가 아주 멋지다. 어떻게 만나게 됐나.

"울릉도 북면에 있는 현포리 파출소장을 할 때였다. 순찰을 하다 우연히 이곳을 보고 완전히 매료됐다. 탁 트인 바다와 코끼리바위, 전망이 정말 좋았다. 해가 지고 파도 치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이었다. 장관이었다. 발을 내딛는 순간 머릿속에서 저절로 공원이 그려졌다. 운명의 여인을 만난 듯 그렇게 이곳을 만났다."

-공원을 조성하는 게 힘들었겠다.

"처음 이곳은 더덕밭이었다. 더덕을 캐내고 나무부터 심었다. 여기에 오면 울릉도에서만 사는 나무나 식물을 한꺼번에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현재 35종의 울릉도 천연기념물이 있고 1천200년 된 주목나무가 있다. 청도에 있을 때 농사짓고 과수나무를 기른 경험이 공원을 꾸미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어느 정도 조성이 되자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은 40점 이상의 서각이 군데군데 서 있다. 액자 속에만 있던 글자가 하나씩 자연으로 나온 것이다. 소재가 나무여서 썩지 않도록 하는 방법도 직접 개발했다. 무엇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밥도 굶었다고 들었다.

"수십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목돈이 들어갔는데 관광객은 오지 않고, 일은 하루종일 해도 끝이 없었다. 라면 먹을 돈도 없었다. 지쳐갔다. 아내는 이를 견디지 못하고 우울증에 걸렸다. 결국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포항 친정에 갔다. 혼자 이 넓은 공원을 가꾸며 보낸 3년의 세월은 앞이 보이지 않던 캄캄한 시기였다. 그런데 그 또한 지나가더라. 이제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온다."

-가수 이장희 씨의 응원이 컸다고 들었다.

"힘들 때 가장 든든한 지원자였다. 포기하지 않게 만들어준 이웃이다. 장비도 지원해주고 나의 꿈을 지켜보면서 인정도 해주고 격려도 해주었다. 이씨는 지금도 막걸리가 생각나면 우리 집에 온다. 반대로 와인이 생각나면 내가 이장희 씨 집으로 간다. 고마운 사람이다."

-울릉도는 언제 가장 아름다운가.

"울릉도 해국이 필 때다. 국화가 바람에 흔들릴 때면 정말 아름답다. 특히 일몰 즈음 석양의 풍광은 말하기 힘들 정도다. 공원에 앉아 해지는 모습을 보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장희 씨도 이런 경치에 반해 울릉도에 왔다. 울릉도의 사계절 모두가 가슴을 흔들어 놓을 만큼 빼어나다."

-섬 생활이 답답하지는 않은가.

"두 달에 한 번 육지로 나간다. 답답해서가 아니라 그곳의 변화가 궁금해서다. 제일 먼저 서울로 간다. 인사동 미술관과 좋은 전시회가 있으면 둘러본다. 이번에는 파주 헤이리 마을을 다녀왔다. 비록 섬에 있지만 끊임없이 배우고 익혀 새로운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앞으로 꿈은?

"세계적인 문자조각공원을 만들고 싶다. 아름다운 글씨와 울릉도의 풍광이 멋지게 어울리는 공원을 연출하려 한다. 물론 손익분기점이 되면 '예림원'을 공적인 시설로 만들 생각도 갖고 있다. 공원은 지금도 변화 중이다."

김순재 객원기자 sjkimforce@naver.com

사진: 권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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