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 광장] '더 테러 라이브 오브 4대강'

모 영화연구소의 리포트를 보니, 올 8월 상영된 4편(설국열차, 더 테러 라이브, 숨바꼭질, 감기)의 한국 영화를 모두 관람한 1% 핵심 관객들이 '더 테러 라이브'를 첫손에 꼽았다고 한다. 감기를 제외한 3편의 영화를 본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한 편의 영화를 보고 재미와 의미를 포착하는 지점은 사람마다 다를 테다. 내 관점으로는, 이 영화가 무엇보다 '침묵을 강요당한 최하층 사람들이 말하는 방식'으로 읽혔다. 그들은 세련되게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말할 수 있는 매체도 가지지 못했으며, 설사 말한다 한들 청중이 없는 사람들이다. 영화 속 테러범 또한 수없이 말로 호소하고 외치고 관계 기관에 진정해도 그야말로 '소리 없는 아우성'에 그쳐버리는 절망의 경험을 겪었을 것이다. 테러범은 자기 같은 사람의 말 따위는 아예 들리지도 않는 듯, 태무심한 그들에게 마포대교 폭파라는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9'11 테러를 배경으로 한 미국 소설의 제목) 테러로써 메시지를 전달한다. 왜 하필 마포대교일까. 한국 사회의 말을 장악한 정치인'언론인들은 주로 여의도에 밀집해 활동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진심으로 응답하려 하지 않고, 책임의 윤리를 회피하면 할수록 테러범은 더 시끄럽고 더 끔찍하게, 즉 테러의 수위를 높여 말한다.

물론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영화 관객은 영화 속 테러범의 메시지 전달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궁지에 빠진 뉴스 진행자가 아무도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을 거라는 공포감에 사로잡힐 때, 우리도 저런 상황에 처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부르르 떤다. 그리고 테러범의 사연이 하나씩 하나씩 드러날 때, 언젠가 우리 귀를 바람처럼 스쳐간 어떤 하소연이 떠오르며 그가 우리 옆에 있는 누군가일지 모른다는 각성에 이른다. 문제는, 우리가 그 방식에 동의하건 말건 간에, 우리 사회가 어떤 억울한 사람들의 말을 끝끝내 들어주지 않을 때는 그렇듯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말하기 방식이 '터져 나올 것'이라는 점이다.

내가 전공도 아닌 영화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은 까닭은 근래 4대강에 나타난 죽음의 녹조 현상이 '침묵을 강요당한 자연이 말하는 방식'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자연은 인간의 말을 못 하지만, 스스로 자연의 일부임을 생생히 느끼는 사람들은 종종 자연의 말을 듣는다. 말뿐만 아니라 고요히 기뻐하는 소리, 끙끙 앓는 소리도 곧잘 듣는다. 그런 사람들이 지난 이명박정부의 4대강 사업에 반대하여 끈질기게 성명서를 발표하고 시위를 하고 광고를 하고 책을 내고 순례를 하며 강과 함께 아파했건만, 추진력 좋은 대통령이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국가사업을 철회시키지는 못했다.

2010년 모월 모일, 나는 어떤 인연 때문에 국가정보원 사람들과 저녁 식사를 했다. 그들은 정보를 다루는 사람답게 내가 4대강 사업에 공개적으로 반대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과장이 물었다. 정부에서 죽어가는 강을 살리겠다는데 왜 반대하느냐고. 내가 되물었다. 멀쩡히 살아있는 강에 세금 퍼부어 죽이려는 사업에 어찌 찬성할 수 있느냐고. 과장이 철없는 동생 나무라듯 훈계했다. 정부에서 뭐 좀 잘해 보겠다고 나서면 수굿이 믿고 따라라, 정부 사업에 사사건건 반대하는 건 종북좌파의 습성이다. 그때 밥 덩어리가 목에 걸려 제대로 논박하지 못한 게 두고두고 억울했다.

말 못하는 자연은 조짐으로, 징후로 말한다. 100가지 조짐을 보이고 1천 가지 징후를 보여도 인간이 알아주지 않을 때, 자연의 말은 언제고 더 폭력적인 방식으로 '터져 나올 것'이다. 지금 우리의 눈앞에 이른바 녹조라떼가 터져 나왔지 않은가. 아니 이것은 하나의 징후일 뿐, 아직은 터져 나온 게 아닐지 모른다. 어느 날 우리 삶의 터전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강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방식으로 말하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라이브일 것이다. '더 테러 라이브 오브 4대강'.

박정애/강원대교수·스토리텔링학과 pja83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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