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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그거 돈 되나?

정연지 대구미술광장 입주화가 gogoyonji@hanmail.net
정연지 대구미술광장 입주화가 gogoyonji@hanmail.net

홉 베마의 '미델하르니스의 길'을 처음 보았을 때가 생각난다. 미술 교과서에 실린 작은 그림 속에는 교회 건물과 농가, 전지 중인 농부와 산책하는 사람, 가로수들과 하늘이 있었다. 대단한 그림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있었지만, 그러나 놀랄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라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우리나라에도 '미델하르니스의 길'과 비슷한 길들은 많다. 우리나라의 길들도 오솔길이나 논두렁길처럼 자연미 넘치는 길들이 아닌, 들판 가운데를 달려가는 이른바 신작로들은 대개 '미델하르니스의 길'처럼 생겼다. 특히 포장되기 전의, 가로수들이 잘 자란 흙길이면 더욱 그러하다. 그런 까닭에, 멀리 있는 것은 희미하고 작으며, 가까이 있는 것은 뚜렷하고 크다는 원리를 사실적으로 원근법에 잘 맞추어 그려내면 '미델하르니스의 길'과 유사한 그림이 탄생한다.

하지만 모네의 정원 그림들을 보았을 때에는 느낌이 달랐다. 모네는 어떻게 이런 구도와 색감을 상상해내었을까? 화가의 길을 걸으리라 마음먹고 있던 내게 그의 정원들은 정말 놀라웠다. 나의 상상력도 저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나는 공연히 주눅이 들었고, 세상에 있을 수 없는 풍경을 창조해낸 대가를 숭배하는 마음에 젖어들었다.

그런데 유럽 여행을 다녀온 뒤로 생각이 바뀌었다. 그들이 그린 것은 창조해낸 풍경이 아니라 눈에 들어오는 실물 그 자체였다. 뜰에 앉아 눈앞의 정원을 그리면 그 자체로 그림이 되는 세상, 모네 등은 그런 곳에 살았다. 붓을 들어 선을 긋고 채색을 하면 그림이 되는 환경, 그들의 주거지는 그런 수준이었다.

독일, 프랑스 등지에서 본 무수한 2층 집들도 그 자체로 이미 한 폭의 그림들이었다. 우리처럼 고층아파트로 빽빽한 풍경은 대도시 베를린에도 거의 없었다. 2층 집들의 창에는 한결같이 아름다운 화분들이 걸려 있었다. 그들은 찍으면 사진이 되고, 그리면 미술작품이 되는 주거환경을 스스로 가꾸어서 누리고 있었다.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물론 이때의 환경에는 자연환경도 포함된다. 좁은 땅, 척박한 농토, 덥고 습한 기후, 빌딩숲, 골목까지 포장된 도시의 길들이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성정을 결정한다는 말이다.

사람살이의 방향을 올바르게 결정하는 데에 도움이 되도록 주거환경을 가꾸어야겠다. 꽃과 나무, 강과 바람을 일상적으로 즐길 수 있는 친자연 주거환경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의 심성은 점점 삭막해진다.

'그거 돈 되나?'식 질문만 하는 메마른 결과주의자들로 가득 찬 사회는 앞날이 어둡다. 손바닥만 한 땅이라도 발견하면 곧장 거기에 꽃과 나무를 심자. 노후의 전원생활을 벼르는 이보다는, 그때그때 만물의 영장답게 살아가는 지혜를 발휘하는 사람이 훨씬 현명하다.

대구미술광장 입주화가 gogoyonj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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