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룸메이트'란 내겐 꽤 설레는 단어였다. 여러 이야기나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룸메이트들의 관계는 굉장히 이상적인 모습이었고, 가족으로부터의 '독립'을 상징함과 동시에 함께 웃고 울고 해줄 수 있는 친밀한 관계였다. 그 모습에 반했던 나는 나중에 성인이 되면 꼭 룸메이트를 가져보리라 마음먹었다.
마침내 대학교에 진학한 후 내가 원하던 대로 친한 친구와 룸메이트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현실의 룸메이트는 이야기 속에 나오는 것처럼 늘 좋지만은 않았다. 주변에서 함께 살다가 서로 얼굴 붉히고 결국 남남이 되다시피 해서 각각 떨어져 살게 되는 동기, 친구들을 많이 봤었다.
그래서 의가 상하는 경우도 있다며 걱정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둘이서 함께 살면 혼자 살 때보다 덜 외롭고 안심되고, 금전적으로도 이점이 있었기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다행히 친구와 나는 함께 생활함으로써 더 가까워지고 이제는 가족처럼 살뜰한 사이가 되었다. 그러나 여러 사람과 룸메이트를 해 봤지만 그 친구처럼 서로 불평불만 없이 잘 지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마도 그렇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그 친구도 나도 서로가 서로를 더 많이 배려하고 이해해줬고, 먼저 양보했기 때문이리다.
지금은 서로 이해와 양보를 필요로 하는 사람 대신 고양이인 체셔와 앨리샤가 바로 내 룸메이트다. 이들은 내 친구가 그랬던 것처럼 내가 없을 때 먼저 청소를 하거나 식사준비를 하는 등의 배려 같은 것은 전혀 없다.
오히려 온 집안에 털을 풀풀 날려 청소거리를 만들어주며 심혈을 기울여 고른 사료가 내키지 않으면 바닥을 벅벅 긁어 모래로 끌어 덮는 시늉을 하기도 한다. 이뿐만 아니라 이들은 고양이기에 사람 룸메이트와는 달리 하나부터 열까지 내 손을 거쳐야만 한다. 게다가 말도 없이 소파나 벽지를 집어 뜯기도 하고 책상 위 볼펜을 축구공인 양 데굴데굴 굴리며 놀기도 한다.
며칠 전엔 체셔가 시도 때도 없이 간식을 달라고 조르는 터에 외면했더니 갑자기 벽으로 다가가 벽지를 확 긁어버리는 바람에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게다가 눈치 없이 화장실 갈 때까지 따라와서 감시하며 반려인의 프라이버시를 깡그리 무시해버린다. 녀석들을 못 본 척하고 문을 닫고 씻고 있으면 문 열어달라는 것인지 빨리 나오란 것인지 아웅거리며 보채기에 바쁘다. 이럴 때 보면 정말 배려심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다.
그러나 녀석들은 내겐 꽤 괜찮은 룸메이트다. 우선 녀석들의 의사표현은 단순하면서도 직설적이라 사람들을 대할 때처럼 내포된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홀로 지낼 땐 무서워 밤에 불도 못 끄고 자던 내가 녀석들 덕분에 편안한 잠을 청할 수 있으며, 때론 혼잣말이긴 하지만 말벗이 되어주기도 한다. 즉 매사가 자기중심적인 고양이들 뒤치다꺼리에 몸은 좀 귀찮지만 고양이와 생활은 인간관계처럼 신경 쓸 것이 많지 않고 감정소모도 적다.
그래서일까 얼마 전 수많은 나홀로족들이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거의 2년 사이에 2배 가까이 집 고양이의 수가 늘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그 연유 중 하나는 고양이가 다른 반려동물에 비해 '독립적'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론 그런 이유도 분명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긴 하겠지만 아마도 그 사람들도 나처럼 고양이를 통해 지친 마음을 위로받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내 옆에서 고롱고롱 소리를 내며 머물러 있는 고양이들이 내겐, 단언컨대 가장 완벽한 룸메이트이자, 가장 완벽한 반려동물이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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