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북人세계In] <14>호주 시드니 정동철 변호사

어학연수 왔다 법조인으로 급반전…소수민족 대변 '다문화 로펌'이 꿈

기자가 되길 꿈꿨던 정동철 변호사는 소수민족 출신들의 권익을 대변해 주는
기자가 되길 꿈꿨던 정동철 변호사는 소수민족 출신들의 권익을 대변해 주는 '다문화 로펌'을 만들고 싶어 한다.

"원래 기자가 꿈이었는데 호주에서 변호사 일을 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인생이란 게 마음먹는 대로 풀리지 않기도 하지만, 때론 다른 선택이 기대 이상의 삶을 선물해주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호주 시드니에서 한국인 변호사로 구성된 로펌 'Logos Lawyers'의 대표를 맡고 있는 정동철(44) 변호사는 언론사 기자 시험 준비를 위해 호주에 어학연수를 왔다가 정착해 현지에서 법조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어학연수 왔다가 정착

정 변호사는 영천 영동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은행에 취직했다. 1년 뒤 은행을 나왔다. 은행 일이 적성에 맞지 않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기자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영어 실력을 쌓으려고 호주로 어학연수를 왔다. 현지 한인교회에서 예쁜 여성(교민 2세로 당시 대학 1학년이던 지금의 부인)을 만났다. 사귄 지 3개월 만인 1996년 '백수' 신분으로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며느리의 학력이 대졸은 돼야 한다는 아버지의 성화에 다시 호주로 왔다. 부인은 대학을 계속 다녔고 정 변호사는 시드니대학에서 국제정치학 석사과정을 밟았다. 대학원에 진학한 것은 언론사 입사 나이 제한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1997년 12월 첫딸이 태어났다. 석사학위도 받았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가 언론사 시험을 볼 상황이 아니었다. 당시 한국은 외환위기로 인해 상당수 기업들이 정리해고와 부도사태로 홍역을 치를 때이다. 언론사에도 구조조정 폭풍이 몰아쳤다.

"막막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호주에 정착하자니 정치학 전공으로 취업할 만한 데도 없었습니다. 고민 끝에 로스쿨 진학을 결심했습니다."

그는 시드니대학 로스쿨에 입학했다. 2003년 졸업 후 6개월 연수를 마친 뒤 변호사가 됐다. 눈앞에 가로막힌 벽을 허물어뜨린 기분이었다. 하기야 벽은 원래 사람이 다니던 곳에 만든 것이니.

◆'다문화 로펌' 만들고 싶어

처음엔 소규모 한인 변호사 사무실에 취직했다. 1년 뒤 호주인 변호사가 운영하는 사무실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교통사고 보상 업무를 익혔다. 그러던 중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호주에서도 인맥이 중요하더군요.(웃음)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던 호주인 비서와 친하게 지냈는데 그 비서가 중견 로펌(Access Business Lawyer's)에 저를 추천을 해줬어요. 그곳은 초임 변호사들이 서로 들어가고 싶어하는 로펌이거든요."

그는 Access Business Lawyer's에서 3년 동안 비즈니스 관련 법률 업무를 경험했다. 이렇게 3곳의 변호사 사무실을 거친 뒤 2008년 한인 변호사 2명과 함께 현재의 로펌을 만들었다.

정 변호사는 소수민족 출신들의 권익을 대변해 주는 로펌을 만드는 꿈을 갖고 있다. "법정에 가면 어떤 판사는 말을 어물어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현지인들은 쉽게 알아듣는데 이민자들은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해 불안해합니다. 그런 광경을 볼 때마다 마이너리티(소수자)를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정 변호사가 일하는 로펌의 의뢰인 대부분은 한국 교민이거나 한국 기업이다. 앞으로는 중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사람들을 대상으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는 "중국계나 소수민족 출신 변호사를 고용해 '다문화 로펌'을 만들 생각"이라고 밝혔다.

◆기고와 봉사활동

그는 사유하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기자의 꿈은 접었지만 신문사 통신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기도 했다. "우연한 기회에 경향신문 사이트에 해외체험기를 쓰게 됐고, 친구의 소개로 '한겨례 21'의 통신원이 됐습니다. 통신원 활동은 재미있었습니다. 호주 원주민 수난 역사, 동티모르 망명정부(호주) 등에 대해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요즘은 교민신문에 호주의 정치, 한국의 이슈 등을 주제로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뭐 잘 쓰는 것은 아닌데 교민들이 잘 읽어주고 계십니다. 하하."

정 변호사는 자신을 '박쥐 같은 존재'라고 표현했다. 의식은 한국 사람인데 몸(생활)은 호주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호주 사람과 다른 독특한 시각을 가질 수 있으며, 이는 인간관계나 업무에 있어 도움이 될 때도 있다고 한다.

그는 한인교회(열린문교회)에서 주일학교 고등부 교사로 봉사한다. 그가 지도하는 학생들은 교민 1.5 혹은 2세대. "학생들 가운데 상당수가 호주와 한국의 문화적 차이로 갈등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런 경험이 있기에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위로해주려고 노력합니다."

정 변호사는 몇 년 전부터 시드니한인회, 민주평통, 경북대구향우회 등 교민단체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호주 이민생활에 대한 자평을 들어봤다. "호주에서 처음 생활할 때 부모 형제와 떨어져 살아야 하는 점, 학맥'인맥에 대한 상실감, 문화(인종) 차이 등으로 인한 마음고생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개척해서 얻는 경험과 통찰, 이질감을 동질감으로 발전시켜 친구를 만드는 일 등에서 쾌감과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 어떤 후광 없이 오로지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죠."

호주 시드니에서 글'사진 김교영기자 kim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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