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인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될 인물이 1834년, 페루의 파이타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남미의 독립 영웅 시몬 볼리바르의 부하였다. 미구엘 그라우 세미나리오는 9세 때 처음 본 바다를 사랑하게 됐으며 상선에서 일하며 바다 일에 잔뼈가 굵어졌다. 19세 때 해군에 입대, 10년이 지난 후 페루 군함 건조 감독 업무를 잘 수행하는 등 장교로서 탁월한 능력을 펼쳤다.
그가 45세이던 1879년 2월에 페루-볼리비아 연합군과 칠레 간에 전쟁이 일어났다. 세 나라는 원래 스페인에 대항해 동맹을 맺은 사이였으나 칠레가 페루와 볼리비아 영토 내의 광산에 욕심을 내면서 관계가 틀어졌다. 세미나리오는 해군 함장으로서 칠레 해군들을 연파하고 제독으로 승진했다. 은밀히 접근해 기습 공격을 가하고 나서 물러서는 뛰어난 전술에 칠레 해군은 큰 타격을 입었다.
세미나리오는 전쟁사에서 드물게 특별한 기사도와 인간애를 발휘했다. 전사한 적 지휘관의 미망인에게 위로 편지를 보내고 전투에서 승리가 확실해지면 바다에 빠질 상황의 적 병사들을 구했다. 이 때문에 그는 '바다의 신사'로 불렸으며 칠레인들도 그를 존경하게 됐다. 그러나 그 해 오늘, 칠레와의 해전에서 포탄에 맞아 숨을 거두고 말았다. 칠레는 그의 시신을 수습해 성대한 장례식을 치렀으며 나중에 그의 유해를 페루에 돌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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