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만지기만 하면 황금으로 변하게 하는 '미다스의 손'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다스(Midas) 왕이 주인공이다. 만지는 모든 것이 황금으로 변하는 황홀한 기적은 곧 재앙으로 다가왔다. 손길이 닿는 즉시 모든 것은 딱딱한 금으로 변해버려 물 한 모금도, 빵 한 조각도 먹지 못하게 된 미다스 왕은 신께 자비를 구했다. 간절한 기도 끝에 황금의 저주를 씻어낸 미다스는 이후 자연을 즐기며 반인반양(半人半羊)의 목신 판(Pan)과 가까이 지냈다. 판의 갈대피리 연주는 일품이다. 교만해진 판은 아폴론에게 도전장을 냈다. 목신 판의 피리 연주와 음악의 신 아폴론의 리라 연주 결과는 뻔했다. 청중평가단과 심사위원장(산신 트몰로스) 모두 아폴론을 택했다. 그런데 미다스가 반기를 들었다.
평소 절친이던 판의 피리 소리를 좋아하던 미다스 왕은 자신과 다른 견해를 보이는 청중과 심사위원을 믿지 못했다. 심판이 불공정하다고 딴죽을 걸었다. 벌을 받은 미다스 왕의 귀가 뾰쪽하게 크게 솟아오르더니 털까지 자라기 시작했다. 미다스 왕의 보기 싫은 당나귀 귀의 비밀은 금방 탄로 났다. 이발사가 구덩이를 파고 사실을 토해냈던 자리에 갈대가 올라와 바람만 불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노래 불렀다. 미다스 왕의 당나귀 귀 이야기는 편견에 사로잡힌 생각이나 판단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운동권 논리건, 좌파 논리건 어느 한 쪽에 치우친 사고는 누구나 경계해야 할 일이지만 특히 법과 정의를 다루는 법조인들은 정치적인 관심이나 편향성을 보이면 안 된다. 오죽하면 정의(justice)의 여신 유스티치아(Justitia)가 선악을 판단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데 공평무사한 입장을 견지하기 위해 두 눈을 가리고 있을까?
그런데 우리나라 사법부가 이상하다. 상식에 어긋나는 판결이 연타석으로 터지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 35부(재판장 송경근 부장판사)는 지난 7일 통진당 당내경선 전자투표를 치르며 대리투표를 한 혐의(업무방해)로 기소된 당원 최모 씨 등 35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지인이나 가족, 친구의 휴대전화로 전송된 인증번호로 대리투표를 하거나 자신의 인증번호를 타인에게 대리투표하게 했는데도 유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초등학교 반장을 뽑을 때도 대리투표를 허용하지 않는다. 아파트 부녀회장을 뽑을 때도 가족 대리투표는 어림도 없다. 헌법학자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는 대리투표까지 인정한 이 판결이 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한다고 했다. 동일 사건 11건에 대해 전국 다른 법원들은 이미 대법원에서 유죄를 확정했거나 항소심 재판 중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부(재판장 박관근 부장판사)는 불법도로점거를 무죄로 선고했다. 민노총 주최 노동자대회에서 김모 씨가 다른 참가자 700여 명과 함께 집회 신고 범위를 벗어나서 도로를 점거하여 1심에서 받은 유죄판결을 뒤엎었다. 무죄의 근거는 일요일 아침이어서 상대적으로 교통량이 많지 않았을 것이며 당초 신고된 범위를 크게 벗어났다고 단언하기에 주저된다는 거였다. 이런 논리라면 앞으로 모든 교통규칙은 위반자 편의대로 해석하면 되겠다. 거~참.
국민 염장을 지른 또 다른 판결은 미전향 장기수로 북송된 이인모 씨의 초청장을 받고, 공작원의 도움을 받아서 몰래 북한에 들어가 한 달간 머물며 김일성 시신에 참배까지 한 조모 씨의 국가보안법 위반(찬양'고무) 일부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 2부(부장판사 박관근)가 내렸다. 끝내 전향하지 않은 이인모 씨를 여러 해 후원한 조모 씨에 대한 판결에서 항소심 재판부는 "동방예의지국인 대한민국에서 평소 이념적 편향성이 뚜렷하지 않은 사람의 단순한 참배행위는 명복을 비는 의례적인 표현"이라고 해석했다. 종북 성향이 없는데 이인모 씨를 후원하고 불법 방북하여 예의도 바르게 김일성 시신에 조문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대한민국의 국시는 반공이다. 김일성의 남침으로 수백만 명이 피를 흘렸고, 남북은 갈라졌다. 동방예의지국이라도 원수에게는 절을 하지 않는 것이 예의 바른 행동이다. 살인마에게는 절을 해서는 안 된다. '예기'(禮記)에서도 그렇게 예를 가르치지는 않는다. 사법부가 신뢰를 되찾으려면 사회 통념에 맞는 판결이 나와야 한다. 위기의 사법부가 예기를 제대로 읽고, 상식이 살아 있는 판결을 내려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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