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사람이 임금의 잘못을 말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윗사람도 신하의 죄악을 바로잡지 못한 채 아첨하고 의심하는 더러운 풍조가 성행하여 선왕(先王) 말년에 이르러서는 조정의 혼탁함이 극에 달했습니다." 1608년, 갓 즉위한 광해군이 나라를 잘 다스릴 방법을 묻는 전교를 내리자 우복 정경세가 올린 상소문의 한 구절이다.
조목조목 실정(失政)을 비판하자, 광해군은 선왕을 욕보였다며 크게 화를 내 상소문을 불태우고 우복의 죄를 다스리려 했으나 여러 중신의 만류로 삭탈관직으로 마무리했다. 작가 박영규가 조선왕조실록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조선시대를 통틀어 왕의 지시나 정책에 반대한 사례가 96차례였다고 한다. 조선이 절대왕정 국가였지만, 언로(言路)가 열려 있어 왕도 함부로 하지 못한 일들이 많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요즘 지방자치단체장의 일 처리를 보면, 과거 왕정 시대보다 더 절대적인 권력을 누리는 것처럼 보인다. 여론의 순리에 따라 공정하고, 상식적인 행정을 한다고 큰소리치지만, 실제로는 많은 일에서 독단적이다. 대구시는 최근 대구오페라재단 대표를 선임했다. 선임 과정의 불공정성과 정부의 권고 사항을 지키지 않은 것이 지적됐지만 막무가내였다. 수성구청은 수성아트피아 관장의 임기 연장 여부 문제로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인사위원회에서 연장 불가를 결정했으나, 이를 거부할 만한 특별한 이유 없이 구청장이 재논의를 지시하면서 갈팡질팡 중이다.
잘못이 있지만, 이를 무시하고 강행하는 데에는 대체로 2가지 이유가 있다. 잘못을 인정하기 싫거나, 정치적이든, 사적(私的)이든 다른 흑막이 있어서다. 어느 쪽이나 행정 책임자로서 옳지 않은 처신이다. 여론보다는 자존심 또는 정치적, 사적으로 얽힌 것을 우선한다는 뜻이어서다. 특히 위 사례는 모두 정부의 감사 때 지적을 받을 충분한 사유가 된다. 문제는 자치단체장은 그러한 지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지적은 지적일 뿐이고 '앞으로 고치겠다'고 하면 그것으로 끝이기 때문이다.
공자는 논어 학이(學而) 편에서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라고 했다. 잘못이 있으면 고치는 데 꺼리지 말라는 뜻이다. 공자 말씀이 아니어도 이런 유의 금언은 잘 알아도 지키는 이는 드물다. 그러나 잘못을 고집하는 것보다는 이를 시인하고 고치는 자세야말로 여론의 믿음을 얻는 가장 빠른 길임을 알아야 한다.
댓글 많은 뉴스
'尹파면' 선고 후 퇴임한 문형배 "헌재 결정 존중해야"
'퇴임 D-1' 문형배 "관용과 자제 없이 민주주의 발전 못해" 특강
"조직 날리겠다" 文정부, 102차례 집값 통계 왜곡 드러나
이재명 "대구·경북의 아들 이재명, TK 재도약 이끌겠다"
헌재재판관 지명 위헌 논란…한덕수 대행 역풍 맞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