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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뻔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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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글을 쓰다 보면 시간이 빠르게 가는 것을 느낀다. 마감 기한은 왜 이렇게 자주 들이닥치는지 모르겠다. 이 글도 어젯밤에 차분히 썼으면 좋았는데, 바쁜 일과 사이에 틈을 내어 쓴다. 적어도 어제 내 생각은 이랬다. 어제 칼럼을 안 쓴 이유는 오늘이 되면 나는 하루만큼 더 나이 들어 현명해졌기에,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거라는 괴상한 생각.

 결국 나는 오늘도 현명해지지 못했고, 매번 뚱딴지같은 글을 쓰고 있다. 이런 주제에 나는 다른 사람들의 글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이처럼 주기적으로 쓰게 되는 글에 관한 것이다. 사실, 내가 이처럼 짧은 글을 가지고 칭얼대는 이유도 이런 글쓰기를 일주일에 서너 건 정도씩은 해야 되는 사정 때문이다. 하지만 나보다 더 자주, 매일 써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신문기자들이다. 독자들에게 새로운 소식을 늘 전해야 하는 기자라는 직업은 대단하다. 그런데 잡지나 신문 기사를 찬찬히 읽다 보면 거기에 정해진 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새로운 행사를 알릴 때에, 누가 세상을 떠났을 때, 무슨 일이 문제가 많을 때 쓰는 제각각의 틀이 있다. 하긴 이 틀이 없으면 그 많은 기사를 다 써내기 힘들 것 같다.

그래도 가끔씩은 고개를 갸우뚱할 때가 있다. 기사 속 진부한 표현을 조금만 더 줄이면 좋겠다. 신문은 괜찮다. TV나 라디오 뉴스가 전하는 뉴스 내용은 익숙하다 못해 뻔한 이야기들로 채워질 때가 많다. "이른 추위에 아침 출근길 사람들은 옷깃을 세운 채 종종걸음을 내디뎠다." "이번 참사가 휩쓸고 지나간 곳곳엔 주민들의 탄식과 눈물만이 남아있다." 이런 식이다.

레토릭(rhetoric) 혹은 수사학이라는 게 있다. 레토릭은 말하고 글 쓰는 당사자가 참신한 표현 찾기를 게을리하는 경우에 자주 나타난다. 또 그것은 겉만 번지르르한 채 알맹이가 빠진 표현으로, 본질을 숨기고 말과 글의 권위 뒤에 자신을 숨기는 비겁함과도 관계있다. 보도문을 짜내는 기자들의 머릿속에는 레토릭 사전이 들어 있고, 그때마다 필요한 수사어를 인식 속 서랍에서 꺼내어 쓰는 셈이다. 하지만 기자들보다 생각할 여유가 있는 정치인들도 레토릭을 즐겨 쓴다. 애교로 봐줄 만하다.

그런데 나 같은 사람이 쓰는 평론 중에서도 이런 표현이 제법 들어 있다. 해서는 안 될 실수다. "현대 예술의 경향이…"로 시작되는 거창한 도입부로 시작해서 "이 작가의 행보를 기대해본다"로 맺는 글은 어느 장르에서나 접하게 되는 문체다. 평론은 과학이나 언론의 기능적 요소를 품은 매체인 동시에 그 자체가 예술의 양식을 주관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작가들에게는 늘 새로운 작품을 보여줘야 된다고 타이르면서, 정작 본인은 해묵은 표현의 감옥 안에 갇혀 있는 평론가들이 몇 명 있다.

윤규홍 갤러리 분도 아트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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