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낙엽이 떨어진다… 낭만이 쌓인다

떨어진 낙엽 '추억의 길' 관광자원화…낙엽 공예·인테리어 소품 재활용

낙엽으로 만든 장미-박경은 씨 제공(사진 왼쪽). 대구 북구 도남동 한 축산농가에서 주인이 낙엽을 축사에 깔고 있다.(사진 오른쪽)
낙엽으로 만든 장미-박경은 씨 제공(사진 왼쪽). 대구 북구 도남동 한 축산농가에서 주인이 낙엽을 축사에 깔고 있다.(사진 오른쪽)

울긋불긋 물든 단풍잎을 보며 사진 찍기에 바빴던 시간도 잠시. 예쁘게 가을을 치장했던 붉고 노랗게 물든 나뭇잎도 어느새 땅으로 내려앉아 거리를 오색으로 물들이고 있다. 그러나 며칠간 이어진 초겨울 날씨에 이리저리 나뒹구는 낙엽의 모습은 처량하다.

제아무리 가을의 낭만과 정취를 뽐내던 나뭇잎이라도 일단 땅에 떨어지면 '쓰레기' 신세. 땅에 떨어지는 순간. 바람에 날리고 부서지고 미관을 해치는 골칫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수거비용도 만만찮다. 낙엽을 치워야 하는 이에게는 담배꽁초 못지않은 애물단지인 셈이다. 그러나 올가을 낙엽들은 멋진 변신에 성공했다. 쓰레기통에 들어가거나 불에 타지 않고 살아남았다. 거리를 멋있게 장식하는 레드카펫이 되는가 하면 때로는 퇴비로, 때로는 공예품으로 변신해 늦가을의 정취와 낭만을 선사하고 있다.

◆골칫거리 낙엽, 관광자원으로 활용

21일 오후 대구 중구 2'28기념공원. 대부분의 낙엽이 지거나 사라져 없어진 이날. 이곳은 노랗고 빨간 낙엽이 두툼하게 쌓여 아직 늦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찬바람이 '쏴~' 하고 한바탕 불자 낙엽이 이슬비처럼 내리고 땅에 내려앉은 낙엽이 이리저리 뒹굴면서 낙엽천지로 변한다. '바스락'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나는 소리도 참 고소하다. 이곳의 낙엽들은 치워지지 않고 낙엽거리의 일부로 변신했다. 낙엽이 화려하게 재탄생한 셈이다.

마침 대구 관광에 나선 중국인 샤샤(22'여) 씨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친구들과 대구로 여행을 왔다. 이곳 저곳을 둘러보다 공원에 쌓여 있는 예쁜 낙엽을 보고 잠시 들렀다. 대구에서 마지막 가을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너무 좋다"고 했다.

대구시는 지금까지 수거된 대부분 낙엽은 매립장에 보내 처리해 왔지만 낙엽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이곳의 낙엽은 치우지 않고 그냥 두고 있다. 대구시 관계자는 "가을의 끝자락에서 시민들에게 가을의 낭만을 선사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올해 대구에는 대구스타디움 월드컵로, 앞산자락길 등 26곳이 이곳처럼 '추억의 가을길'로 선정됐다. 특히 올해는 단풍이 아름다운 길, 사색'산책하기 좋은 길 등 입맛대로 낙엽이 만들어내는 낭만을 즐길 수 있다. 팔공산 일대 팔공로(공산댐∼공산터널∼백안삼거리∼도학교 7.5㎞), 팔공산순환도로(팔공CC삼거리∼파계사삼거리 12.2㎞), 파계로(파군재삼거리∼파계사삼거리 6.8㎞) 등은 드라이브하기 좋은 곳이다. 대구스타디움 월드컵로(월드컵삼거리∼대구스타디움 입구 1.3㎞), 대구수목원 데크로드(입구 초소∼유실수원 1㎞), 두류공원 산책로(두류도서관∼산마루휴게소 1㎞) 등은 가족 또는 연인과 함께 거닐기에 딱 좋다.

도심에서도 낙엽이 만들어내는 장관을 즐길 수 있다. 2'28기념 중앙공원(관리사무실∼공원 동편 0.1㎞)을 비롯해 국채보상기념공원(달구벌대종∼조형분수 0.1㎞), 경상감영공원(관리사무실∼남쪽 산책로 0.2㎞), 달성공원(토성산책로 1.3㎞) 등이 대표적이다. 서대구공단 완충녹지, 달서천로, 학정로, 대구체육관로 등은 출'퇴근 등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대구시 이진충 가로수 담당은 "시민들이 도심에서 아름다운 단풍을 보고 낙엽을 밟으며 낭만을 느끼고 추억을 만들 수 있도록 낙엽거리를 조성했다. 가을에 대구를 대표하는 관광명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가정에서도 귀한 대접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낙엽을 사뿐히 지르밟고 가시옵소서.'

떠나가는 가을을 외면하기란 참 어렵다. 다행히 낙엽을 이용해 가을의 정취와 낭만을 붙잡는 이들이 늘고 있다. 삼성생명에 근무하는 박경은 씨는 '낙엽'으로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이 취미다. 올가을 내내 직장동료와 함께 낙엽으로 장미꽃 등을 만드는 재미에 푹 빠졌다. 낙엽 공예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보험가입자들을 대상으로 강의할 정도로 빼어난(?) 실력을 자랑한다. "가을을 워낙 좋아하는 데다 낙엽이 지는 모습을 그대로 담고 싶어 고민 끝에 낙엽을 활용한 공예품을 만들기로 했어요. 재료비가 거의 들지 않는데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부스러지기 쉽지만 물을 뿌려 촉촉한 상태로 만들면 접기 쉽고 보관하기도 쉬워요."

한때 문학소녀였던 김미화(40) 씨도 얼마 전 낙엽무늬가 있는 벽지로 집안 인테리어를 마쳤다. "얼마 전 집 안 청소를 하다 우연히 고교시절 즐겨 읽었던 시집을 발견했어요. 시집 사이에 곱게 접힌 낙엽을 보다 그만 추억에 잠겼지요. 사라져가는 가을이 꼭 내 인생 같기도 했고요. 고민 끝에 집안의 벽지를 낙엽무늬로 바꾸자고 결심했지요." 김 씨는 대구 북구에 있는 벽지업체에 낙엽벽지를 주문해 집안을 가을의 낭만으로 채웠다. 벽지업체 뷰티풀 알롱달롱 관계자는 "이맘때면 낙엽 무늬가 있는 벽지로 인테리어를 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낙엽을 무늬로 한 상품이 30여 가지나 돼 나만의 가을 풍경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가정에서도 낙엽을 재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주부들 사이에 낙엽으로 장식한 유리병이나 꽃병이 인기를 얻고 있다. 색깔이 곱고 훼손되지 않은 낙엽은 고급 책갈피로 귀한 대접을 받는다. 낙엽과 플라스틱을 재활용한 벽돌이 판매되는가 하면 낙엽으로 만든 장미 등 수제품이 인터넷에서 인기 품목으로 팔리고 있다. 대구의 한 전단지 업체 관계자는 "요즘은 길거리 낙엽이 바로 치워지지 않고 낙엽거리로 조성되고 있다. 낙엽에 프린팅하여 홍보물로 활용하는 방법을 연구중이다"고 밝혔다.

◆낭만의 만추홍엽. 버리지 않고 재활용

대구에는 21만1천여 그루의 가로수가 있다. 여기서 생기는 낙엽쓰레기는 연간 4천200t에 달한다. 이 중 1천100t만이 가축사료나 퇴비 등으로 재활용되고 나머지는 매립 또는 소각처리된다. 이 과정에 들어가는 비용은 수거를 위한 인건비와 차량유지비를 제외하고 연간 6천만원 정도.

대구시가 낙엽 재활용 사업에 나서고 있다. 가로수 낙엽을 버리거나 태우지 않고 지역 농가에서 퇴비 등으로 다시 쓰도록 하는 방안이다. 이를 위해 시는 내년 2월까지 달구벌대로 등 41개 대로와 주요 간선도로에 진공청소차량 40대를 배치해 수거된 낙엽을 신청한 농가나 비료생산 업체 등에게 무료로 나눠준다.

대구시 김부섭 환경녹지국장은 "지난해 가로수 낙엽 퇴비화 사업을 추진한 결과, 반응이 좋아 올해는 본격적으로 낙엽 재활용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가로수 낙엽을 사용하려는 농가는 물론 비료생산업체 등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구청도 적극적이다. 북구청은 5년째 도심 낙엽쓰레기 수거 및 퇴비화 작업으로 예산도 아끼고 낙엽을 퇴비로 활용하려는 농가에 무상으로 공급하고 있다. 북구청 관계자는 "2009년부터 낙엽이 많이 떨어지는 10월 말∼12월 초 관내 낙엽쓰레기를 수거, 조야교 아래쪽 금호강 둔치에서 담배꽁초와 병뚜껑 등 이물질 분리작업을 한 후 이를 희망 농가에 나눠주고 있다"고 했다. 북구청은 낙엽쓰레기를 재활용, 쓰레기 처리비용과 운반비 등 매년 1천여만원을 아끼는 등 예산을 절약하고 있다. 남구청과 서구청도 재활용 선별장을 마련, 도로에서 수거한 낙엽을 마대에서 꺼내 담배꽁초와 비닐 등 이물질을 제거한 후 지역농가에 무상 공급하고 있다.

농가는 대환영하고 있다. 칠곡군 동명면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강현구(57) 씨는 "낙엽으로 만든 퇴비는 토양 수분조절과 영양분 공급은 물론 제초효과까지 있어 친환경 농사에 많은 도움이 된다. 게다가 구청에서 무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데다 비료 구입비가 들지 않아 1석2조다"고 설명했다. 청도에서 축산업을 하고 있는 최영웅(55) 씨는 "낙엽을 축사에 깔면 겨울철 보온 효과도 있고 사료로도 사용돼 소들이 춤을 출 정도로 좋아한다"고 했다.

대구시 우주정 자원순환 과장은 "낙엽을 퇴비로 재활용할 경우 영양분이 풍부하고 화학비료에 비해 토양 오염이 적다. 체계적으로 분리'수거하면 친환경 퇴비로 활용할 수 있어 환경 보호뿐만 아니라 예산 절감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도심의 매연 속에 자란 낙엽이 중금속에 오염돼 있지는 않을까? 기우(杞憂)다. 우 과장은 "낙엽 재활용 사업이 알려지자 낙엽의 중금속 오염에 대해 걱정하는 시민들이 있다. 그러나 대구시의 낙엽은 중금속에 오염되지 않아 농가에서 가축사료나 퇴비로 사용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실제 대구시는 최근 북구 3공단 지역의 가로수에서 낙엽을 채취해 경북농업기술원에 의뢰해 중금속 오염검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중금속(납'카드뮴 등)이 농촌진흥청의 기준보다 극히 낮은 수준으로 검출됐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낙엽은=나뭇잎은 날씨 변화에 따라 자연스런 생성과 소멸과정을 거친다. 기온이 낮아지면 초록빛을 내는 엽록소의 활동이 뜸해지기 시작한다. 특히 햇빛이 적어 충분한 양분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 잎을 떨어뜨려 양분을 아낀다. 이 과정에서 잎자루와 가지가 붙어 있는 부분에 '이층'(離層'낙엽이 질 무렵 나뭇잎과 가지와 붙은 곳에서 생기는 특수한 세포층. 이 부분에서 잎이 떨어지고 그 자리를 보호함)이라는 특별한 조직이 생겨나서 잎이 떨어진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