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를 받을 기회가 생겨서 영국에 갔을 때 일입니다. 연수 갔던 병원은 우리나라 병원과는 달리 2층 건물이 수십 동이 되는 병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엘리베이터가 아주 드물고, 있더라도 장애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만 이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엘리베이터 옆에 호출기를 누르면 열쇠를 가진 병원 직원이 와서 운행을 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계단을 이용해서 다니곤 하였지요.
그런데 제가 그 병원에서 특이하게 느낀 것 중에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계단을 다 올라가서 문을 열고는 뒤에 사람이 오는지 한 번씩 뒤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계단의 문을 열고 뒤에 사람이 가까이 오면 문을 잡고 다음 사람이 와서 잡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참 친절한 사람을 만났구나 생각했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서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대부분 뒤에 오는 사람들이 감사의 말을 하면서 약간의 눈인사까지 하는 것을 보고 연수 오기 전에 제가 만난 환자 한 분이 생각났습니다.
지금처럼 찬바람이 부는 추운 겨울, 너무나 추워서 바쁜 걸음으로 백화점에 가는데 입구에서 앞사람이 손을 놓은 유리문에 얼굴을 부딪쳐 얼굴 광대뼈가 골절되어 저에게 찾아오셨습니다. 너무 아파하는 동안 문을 놓은 사람은 찾지도 못하고 그렇게 혼자 병원에 오신 것이었습니다. 진단을 위해 찍어본 컴퓨터 단층 촬영(CT)상에 골절이 너무 심해서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지요. 다행히 수술이 잘되어서 퇴원하던 날, 환자분은 문을 닫을 때 뒷사람이 오는지 꼭 확인하고 그 사람이 문을 잡을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귀국해서 제가 근무했던 병원에서 한번 실천해 보았습니다. 평상시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지만 좀처럼 눈인사도 잘 하지 않는 많은 분들과 웃으면서 인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간단하게 안부도 묻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유모차를 몰고 병원에 오신 분들에게 제가 문을 잡아 드리니 "정말 고맙다"고 함박웃음까지 지으시는 겁니다.(경상도 사람들은 감정 표현에 참 인색하단 얘기를 많이 하는데 반드시 그렇지는 않은 듯합니다) 이렇게 모두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는 제가 실천한 작은 하나의 행동이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얼마 전 매일 탑리더스 아카데미 수업에 참석하여 서울대 융합기술대학원 손욱 교수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감사의 운동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매일 5가지를 감사하고, 매주 한 가지씩 착한 일을 하면서 나눔을 실천하고, 한 달에 책 2권을 읽고 토론을 하면 자신이 변하고 나아가 가정과 직장 사회가 변해 행복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영국 웨스트민스턴 성당 지하 묘지에 있는 어느 성공회 주교의 묘비에 이런 문구가 있음을 소개해주셨습니다.
"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상상력의 한계가 없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그러나 좀 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란 것을 알았다. 그래서 시야를 좀 더 좁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기 위해 자리에 누워 문득 깨닫는다. 만약 내가 나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가족들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내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도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는가? 이 세상까지도 변화시켰을지."
그 강의를 듣고 감명받아 지금의 내 모습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가져 보기로 했습니다. 오늘도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아프지 않아서 감사하고, 가족이 있어서 감사하고,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어 감사하고, 삼시세끼 먹을 수 있는 밥이 있어서 감사하고,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옷이 있어 감사하고,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어서 감사하고…. 어느 광고 문구처럼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과 밤이 아침으로 바뀌는 기적,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평범한 거리를 볼 수 있어 감사하고…. 참으로 감사할 일이 태산같이 많음을 느꼈습니다. 이 모든 감사의 마음을 실천해 보니 현실은 변한 것이 없는데 제가 느끼는 행복감과 삶의 효용이 훨씬 커졌음을 느꼈습니다. 제가 감사하는 모습을 보고 집사람과 아이들의 행동에도 감사함이 스며들어 퍼져 나갔습니다. 예를 들면 가족 식사 시간에 '감사히 먹겠습니다' '잘 먹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얘기를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모두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서로 존중하게 되고, 그러한 개인 하나하나의 행동이 많이 모인다면 우리 사회도 긍정적으로 바뀌지 않을까요?
오늘도 퇴근길 문을 닫기 전에 뒷사람이 오는지 확인해야겠습니다.
홍용택/경북대 모발이식센터 임상교수 plastika@naver.com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
'어대명' 굳힐까, 발목 잡힐까…5월 1일 이재명 '운명의 날'